얼마전 한 신문기사에서 백린 선생님의 부고 소식은 접했습니다. "6·25전쟁 중 규장각 도서 보존한 '사서의 표상' 故 백린 선생"이란 제목의 기사에서는 한국 사서 1세대를 대표하는 백 선생님이 6.25 발발 직후 규장각의 고서를 부산으로 무사히 옮겼던 내용과 휴전후 도서관의 복구, 일본으로 반출된 귀중 문서의 반환 등 생전의 업적을 소개하였습니다.(관련기사:  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5110974501)

 

지난 9월부터 포럼 문화와 도서관 토독회에서 백린 선생님이 집필하신 '한국도서관사연구'를 다루고 있던터라 부고 기사가 더욱 안타깝게 느껴졌습니다. 지난 9월과 10월 두달에 걸쳐 토독회에서 '한국도서관사연구'를 읽고 토론한 내용을 명지대 송승섭 교수님이 후기를 작성해 주셨습니다. 다시한번 백린 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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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린 선생의 한국도서관사연구를 읽고...

 

명지대학교 문헌정보학과 송승섭

 

두 달 전부터 백린 선생의 <한국도서관사연구>를 읽으며 이런 저런 상념에 젖었다. 왜 이 책은 이렇게 어렵게 쓰여 졌을까? 왜 백린 선생이후에 <한국 도서관사>를 새롭게 쓰신 분은 없었을까? 왜 이 책의 참고문헌과 인용문은 온통 日書에 의존했을까?
이 의문들에 대해 스스로 찾아낸 답은 이렇다.

먼저, 백린선생의 이 책이 어렵다는 것은 국한문 혼용에 고어체이고 논문 서술 방식이어서 일반적으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대중적 학술 서적(교과서)과는 차이가 있다.

다음, <한국도서관사>를 더 쓰신 분이 없다는 것은 시대별 도서관사 연구가 아닌 말 그대로 通史가 없다는 뜻이다. 통사란 말 그대로 우리나라 도서관의 전 시대를 다루고 전 지역에 걸친 종합적인 역사의 기술을 의미한다. 이 책의 본문은 153쪽에 그치고 시대별로 의미 있게 언급된 도서관도 손에 꼽을 정도이다.

마지막으로 많은 일서를 인용한 것은 필자가 일제 강점 시기에 공부를 해서 일본어에 익숙했고 일본이 도서관 분야의 선진 문명과 사상을 일찍 받아들였기 때문이었을 것으로 판단되지만 아쉬움이 남는다.

또 한 가지 총체적인 이유를 찾는다면 한국의 도서관사 연구가 대부분 서지학자들에 의해서 이루어졌다는데 있다. 서지학도 여러 종류가 있지만 기본적으로 책(원문)을 대상으로 조사, 분석, 연구해서 기술하는 학문이다. 따라서 그 원문의 출처에 대한 考證校勘이 기본이 되기 때문에 그 기술 방식이 딱딱할 수밖에 없다.

이런 여러 가지 이유들은 단지 이 책을 읽는 어려움뿐만 아니라 한국도서관사가 지금까지 제대로 편찬되지 못한 까닭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유야 어찌되었던 이제까지 읽을 만한 한국도서관사가 없다는 것은 이 분야에 몸담고 있는 후학으로서 책임감을 느끼게 하는 일이요 부끄러운 일이다. 어느 분야이건 간에 역사란 자존감의 바탕이요, 정체성의 다른 이름이며 자신을 들여다보는 거울 같은 존재이다. 우리는 그 거울을 들여다보며 반성도 하고 미래를 개척하기도 한다. 그러니 제대로 된 역사 자체가 없다는 데에 이르면 여기에서 무슨 철학이니 사상이니 하는 것들이 나올 수 있겠는가. 이에 우리가 우리 도서관과 학문의 기본과 정체성을 바로 정립하고자 한다면 무엇보다 제대로 된 역사를 찾아내서 이를 누구나 쉽게 배우게 하는 일이다. 당면하고 시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간고한 마음이 가득한 차에 뒤늦게 한 신문의 부음 보도를 보게 되었는데 다름 아닌 지난 2개월여 내 마음 속에 머물렀던 백린 선생의 기사였다. “이런~~ 돌아가시지 않았을까 생각했는데...” 잠시 탄식이 스쳐갔다. 20여 년 전 그분의 강의를 들었던 그 시절의 강의실이 보이는 듯 했다. 큰 키에 마르고 강단 있게 보였던 그 분의 마지막을 이렇게 보는구나. 참으로 아쉬웠다. 우리 사서들이 선배 대접을 참 못하는구나 하는 송구함이 더 크게 느껴진 순간이었다.

길지 않은 신문 기사지만 살펴 볼 것이 많았다. 다음은 소회와 함께 정리한 대략의 내용이다.

 

한국의 사서 1세대를 대표하는 백 선생이 규장각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48년 서울대 도서관 사서로 부임하면서부터다. 그는 19506·25전쟁이 발발하자 규장각의 고서를 무사히 부산으로 옮기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북한군의 1차 서울 점령 당시 그는 북으로 반출할 도서목록을 제출하라는 요구에도 지연작전으로 장서를 끝까지 지켜냈다. 195012월엔 승정원일기등 국보급 자료 1만여 권을 일일이 새끼줄로 엮어 미군 트럭을 통해 부산행 화물열차에 실어 보냈다. 생전엔 혹시 책이 한 권이라도 없어질까 신혼에도 반년이 넘도록 책 궤짝 위에서 잠을 자며 지켰다며 부산 피란시절을 회고했다. “ 이 내용과 함께 ”1965년에는 규장각을 정리하던 중 이토 히로부미가 최치원의 계원필경등 고서 1028권을 일본으로 반출한 사실을 담은 1911년 조선총독부 문서를 처음 발견했다. 이들 자료 대부분은 1965년과 2010년 두 차례에 걸쳐 한국으로 반환될 수 있었다.“ 는 그의 주요 공적도 소개됐다.  이어서 틈틈이 공부를 놓지 않고 연세대에서 도서관학 석사 학위를 받고, 각 대학을 다니며 강의했다는 내용과 그가 늘 후배들에게 사서는 단순히 책을 분류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책의 내용까지 파악할 능력이 있어야 진짜 사서라며 실력 있는 사서가 돼야 교수들과 대등한 위치에서 제대로 봉사할 수 있다고 강조한 내용을 통해 그의 직업적 소명과 학구열 그리고 후배 사서에 대한 진심어린 충고를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이어 1969년 미국 하버드대의 초청으로 1년간 연구원 생활을 했고, 1973년에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한국학 도서 정리와 자료 전산화를 이끌어 하바드 옌칭도서관이 미국 최고의 한국학 도서관으로 자리 잡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사실과, 1991년 은퇴 후에도 미국 보스턴에 머물며 미주 한인 이민 100주년을 기념하는 뉴잉글랜드 한인사등을 펴냈다는 업적도 소개했다. 이 기사는 우리나라 규장각을 지켜내고 한국도서관사를 펴낸 위인의 마지막 길을 역사 속에 남겨준 소중한 의미를 담고 있다. 사서로서 서지학자로서의 훌륭한 삶을 살았던 위인에 대한 재조명은 더 큰 의의를 발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그렇다. 박병선 박사도 그렇고, 엄대섭 선생도 그랬다. 이렇게 느닷없는 부음 소식은 일생을 도서관계의 발전에 바친 선배 사서에 대한 선학에 대한 죄송한 마음과 스스로의 부족한 능력을 깊이 깨우치게 한다. 어쨌든 그러한 마음은 나중에 갚기로 하고 일단 백린 선생의 저작들을 좀 깊이 있게 살펴보기 위해 자료조사를 해봤다.

백린 선생은 1959년부터 저작을 남기기 시작했는데 1962<奎章閣藏書硏究>로 석사학위를 받은 이후부터는 더 많은 논문을 발표해 1972년까지 44편의 논문을 남겼다. 이후 1969년 미국으로 건너가 하버드 대학에서 연구원 생활을 하고, 몇 년 후 옌칭도서관에서 자리를 잡은 이후로 국내에서는 별다른 저술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다. 다만 몇 번인가 백린선생 초청 강연회가 국내에서 열렸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기록으로 확인된 것은 20046.16일 서울대에서 “6.25동란과 규장각이라는 제목으로 강연한 것이 마지막이 아닌가 생각된다.

 

백린 선생 저작 목록(1959-1972)

 

논문 제목

발행처

연도

1

[국내학술기사]香山實錄曝移安于茂朱赤裳山形止案/白麟 國學資料. 2('72.4)

文化財管理局藏書閣

1972

2

[국내학술기사]韓國古地圖/白麟 圖書館報. 8

서울대학교부속도서관

1972

3

[국내학술기사]한국의고활자,손보기저<서평>/白麟[] 한국사연구=ThejournalofKoreanhistory.7

韓國史硏究會

1972

4

[국내학술기사]집현전과장서각/백린 도서관. 155('71.4)

대한민국 국립중앙도서관

1971

5

[국내학술기사]집현전과장서각/백린 도서관. 156('71.5)

대한민국 국립중앙도서관

1971

6

[국내학술기사]朝鮮後期活字本形態書誌學的硏究./白麟 한국사연구. 4('69.6)

韓國史硏究會

1969

7

[국내학술기사]內賜記宣賜之記하여/白麟 국회도서관보. 6,8('69.10)

대한민국 국회도서관

1969

8

[국내학술기사]LibraryMovementintheEnlightenmentPeriod/白麟 KOREA JOURNAL. 9,10('69.10)

Korean National Commission for UNESCO

1969

9

[국내학술기사]開化期韓國圖書館運動 /白麟 亞細亞. 1,6('69.7·8)

亞細亞社

1969

10

[국내학술기사]韓國書誌關係文獻目錄/白麟 書誌學. 2('69.6)

한국서지학회

1969

11

[국내학술기사]中國上古時代文庫典籍하여/白麟 도서관. 24,1,131

國立中央圖書館

1969

12

[국내학술기사]中國上古時代文庫典籍하여/白麟 도서관. 24,2,132

國立中央圖書館

1969

13

[일반도서]韓國圖書館史硏究/白麟編

韓國圖書館協會

1969

14

[국내학술기사]漢代南北朝時代圖書館史/白麟 도협월보. 10권 제2(19693)

韓國圖書館協會

1969

15

[국내학술기사]朝鮮後期活字本形態書誌學的硏究.,宣祖25~隆熙4사이의奎章閣所藏圖書中心으로/白麟 한국사연구= The journal of Korean history. 3

韓國史硏究會

1969

16

[국내학술기사]대학도서관의綜合目錄과인쇄카드에대한제언/白麟 圖書館報. 6

서울대학교부속도서관

1968

17

[국내학술기사]目錄學槪念古書目錄記述問題<特輯>/白麟 도서관. 128('68.9)

대한민국 국립중앙도서관

1968

18

[국내학술기사]伊藤博文貸出奎章閣圖書하여/白麟 書誌學. 1('68.9)

한국서지학회

1968

19

[국내학술기사]公共圖書館役割/白麟 남산도서관보. 1('67.12)

서울特別市立南山圖書館

1967

20

[국내학술기사]史籍巡禮/白麟 도협월보. 8,10('67.12)

韓國圖書館協會

1967

21

[국내학술기사]癸酉,庚辰,戊午字하여/白麟 도협월보. 8,1('67.1·2)

韓國圖書館協會

1967

22

[국내학술기사]現代分類法하여/白麟 도협월보. 7,6('66.7·8)

韓國圖書館協會

1966

23

[국내학술기사]古書裝釘版心하여/白麟 도협월보. 7,2('66.3)

韓國圖書館協會

1966

24

[일반도서]古書目錄規則:Catalogingrulesfororiginalclassics/百麟編

서울大學校中央圖書館

1966

25

[국내학술기사]古書分類法小考/白麟 도서관. 106('66.6)

대한민국 국립중앙도서관

1966

26

[국내학술기사]古版本裝幀版心하여/白隣 國會圖書館報. 2,11('65.11)

大韓民國 國會圖書館

1965

27

[국내학술기사]古文書硏究와그整理問題/白麟 國會圖書館報. 1,4('64.9)

大韓民國 國會圖書館

1964

28

[국내학술기사]奎章閣略史2/白麟 圖書館報 2

서울대학교부속도서관

1964

29

[국내학술기사]故金泰律先生小傳/白麟 도협월보. 5,7('64.9)

韓國圖書館協會

1964

30

[국내학술기사]奎章閣과그藏書邊遷/白麟 도협월보. 4,4('63.5)

韓國圖書館協會

1963

31

[학위논문]奎章閣藏書硏究/白麟

연세대학교

1962

32

[일반도서]奎章閣藏書에대한硏究:朝鮮圖書解題未收書目五十種/白麟編

연세대학교도서관학과

1962

33

[국내학술기사]分類規程/白麟 도협월보. 2,2('61.3·4)

韓國圖書館協會

1961

34

[국내학술기사]分類規程/白麟 도협월보. 2,4('61.6)

韓國圖書館協會

1961

35

[국내학술기사]分類規程/白麟 도협월보. 2,3('61.5)

韓國圖書館協會

1961

36

[국내학술기사]分類規定/白麟 도협월보. 2,1('61)

韓國圖書館協會

1961

37

[국내학술기사]圖書目錄法入門/白麟 도협월보. 1.4('60.6)

韓國圖書館協會

1960

38

[국내학술기사]圖書目錄法入門/白麟 도협월보. 1.2('60.4)

韓國圖書館協會

1960

39

[국내학술기사]分類規程/白麟 도협월보. 1.9('60.12)

韓國圖書館協會

1960

40

[국내학술기사]圖書目錄法入門/白麟 도협월보. 1.3('60.5)

韓國圖書館協會

1960

41

[국내학술기사]圖書目錄法入門/白麟 도협월보. 1('60.7·8)

韓國圖書館協會

1960

42

[국내학술기사]分類規定/白麟 도협월보. 1.8('60.11)

韓國圖書館協會

1960

43

[국내학술기사]圖書目錄法入門/白麟 도협월보. 1('60.3)

韓國圖書館協會

1960

44

[국내학술기사]도서목록법해설/백린 새교육. 11,2('59.2)

대한교육협의회

1959

 

백린 선생의 여러 저작목록을 보니 그가 사서로서 뿐만 아니라 훌륭한 서지학자였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이 책 <한국도서관학 연구>가 그 분의 석사논문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1962<奎章閣藏書硏究>가 분명히 이 분의 석사논문이고, 그 후 여러 편의 논문을 생산한 끝에 1969년 이 책이 처음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 책이 한국도서관협회 세 번째 총서로 나왔다는 점에서 협회 측에 뭔가 기록이 남아 있을 것으로 사료된다. 후속 연구가 진행되면 그 점도 충분히 조사해야 할 것이다.

<한국도서관 통사>에 대한 나의 생각은 선학들의 마음에도 깊이 남아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에서 서지학적 지식과 함께 학문적 업적을 이루었던 몇 분 교수들의 정년 문집을 찾아보았다. 퇴임하면서 후학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들과 자신의 대표 저작들이 묶여 있는 책이어서 의미 있는 발견이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연세대 이재철 교수의 <한국문헌정보학의 문제들>, 정형우 교수의 <조선조 서적문화 연구>, 성균관대 천혜봉 교수의 <한국서지학 연구><나려인쇄술의 연구>, 중앙대 심우준 교수의 <서지학의 제문제> 등 여러 책에서 많은 힌트를 찾을 수 있었다. 그 분들 역시 이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책들의 내용 또한 방대하고 분류, 편목에 치중해 있고 당장 살펴볼 여력이 안되는 점은 아쉽지만 후일을 기약해야할 듯하다.

찾아보면 볼수록 읽을 책이 넘쳐난다. 늘 그렇듯이 부족함을 느끼게 된다. 다만 이 시점에서 많은 후학들이 뭉쳐 무엇인가 해내야한다는 소명감은 더없이 분명해진다. <한국도서관사>를 제대로 읽어보자고 한 시작한 일인데 왜 이리 어깨가 무거워지는지 모르겠다.

시작이 반이라고 했다. 그래 읽고 쓰는 일만 남았다. 믿는 구석이 있다. 내 부족함을 충분히 메꾸어줄 여러 동지들의 힘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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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포럼문화와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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