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터로 간 책들-진중문고의 탄생, 몰리 굽틸 매닝, 2016.

 

지난 해 페북에선가 언뜻 이 책이 나왔다는 것을 보았고, 즉시 주문했다. 내 관심분야였다. 무려 2000년대 초, 그러니까 우리나라에 제대로 된 병영도서관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그 때였다. 당시 내 근무처인 광화문 북한자료센터를 찾아온 한 친구를 우리 사서가 내게 소개했다. 군에 있는 장병들에게 보내는 잡지를 만들고 있는데 북한에 관한 글을 써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이런저런 말이 오가고 결국 내가 총대를 메기로 했다. 지금은 제법 커진 시민단체로 한 해 수 억 원의 정부 보조를 받고 있지만 당시에는 작은 단체였다. ‘()사랑의 책 나누기 운동본부이야기다. 그 친구는 그 재단의 사무국장이었다. 어쨌든 이 때부터 엮였다. 좋은 의미에서지만. 이 사람들을 돕고 싶었다. 그래서 매월 발행되는 <나눔의 책>송승섭박사의 책!!!’ 이라는 코너를 만들어 월별로 이슈가 되는 북한 책을 소개하는 글을 싣게 되었다. 비록 사업이 부진한 덕(?)에 몇 달 못가서 중단되고 말았지만 내 이름을 걸고 쓴 칼럼은 이 때가 최초이자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이후 이 단체를 위하는 길이 무엇이 있을까 하는 생각에서 모금 운동에도 살짝 관여해보았지만 제대로 되진 않았다. 결국 병영도서관 설립운동의 이론적 기초를 만들어줘야겠다는 책상물림다운 생각에서 자료수집에 나섰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아니 이럴 수가, 어떻게 이렇게 자료가 없나? 그도 그럴 것이 많은 독지가들이 소위 국군장병들에게 책을 전달하는 사업을 위문품 전달하듯 해왔고, 군에서도 진중문고라는 개념으로 책을 제공하고는 있었지만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계획은 미비했고 자료로 남은 것도 단신으로 기록된 신문 기사 이외는 거의 없었다. 해서 국외 자료로 눈을 돌려보니 논문 몇 편이 눈에 띄었지만 병영도서관의 역사 전반과 이론적 기초를 보여줄 수 자료는 역시 쉽게 찾을 수 없었다. 다행이도 그러던 중 찾아낸 책이 우리나라 국립중앙도서관에 단 한권 소장되어 있었던 Katherine J. Harig1989년에 쓴 <Libraries, the military & civilian life> 였다. 작가는 미국의 여성 사서로서 2차 대전 내내 여러 나라 전장에서 도서관을 지킨 분이었다. ~~~

나는 이 책에 이끌려 번역을 통해 국내에 병영도서관의 역사와 철학을 전달하고 싶었다. 그런데 막상 번역을 해놓고 여러 경로로 알아봤지만 작가도 출판사도 연결이 안됐다. 결국 번역서로 출판하지는 못했지만 주요 내용은 이후에 많은 논문에 인용할 수 있었다. 이렇게 시작된 병영도서관에 관한 관심은 이후 몇 건에 프로젝트를 통해 국내에 알렸고 2007년에는 <병영도서관의 이해>라는 책을 발간하게도 되었다. 병영도서관! 그 시작은 병영도서관 설립운동을 열심히 하고 있는 시민단체를 도와주기위해 시작한 일이지만 나로서도 문헌정보학 연구자로서 이 분야의 개척자가 된 것이고, 우리 도서관계에도 새로운 연구 분야의 지평을 열린 것이다.

이후 매년 한 두 차례 군부대를 찾아다니며 병영도서관 역사와 그 운영에 대한 강연을 하게 되다보니 전쟁과 병영도서관에 대한 관심은 느닷없이 잠재의식을 깨우곤 했다. 그런 가운데 만난 두 번째 책은 2012년 강창래 선생이 번역하여 국내에 소개한 레베카 크누스가 쓴 <책을 학살하다 : 20세기 이데올로기> 이다. 20세기의 전쟁은 식민지 전쟁에서 시작된 것이지만 결국 동서 냉전을 통해 이데올로기 전쟁이 되었다. 이데올로기 전쟁은 곧 책의 학살로 표현된다. 책의 전쟁이다. 나의 이념과 다른 적의 이념은 적의 책에 존재한다. 어쩌면 이것은 저 멀리 알렉산드로 도서관으로부터 아니면 그 이전 어느 고대부터 시작된 책의 숙명이다. 책과 이데올로기, 전쟁과 책, 그 속에서 책을 구하기 위해 애썼던 수많은 사서들, 그리고 부역자가 된 사서들 그 모두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책은 20세기 전쟁사에서 이루어진 독일의 나치, 세르비아, 중국 등 여러 나라의 전쟁과 내전 상황의 모습에서 책들이 어떻게 이데올로기의 희생이 되었고 무참하게 학살되었는지를 나타내고 있지만 내가 주 관심을 갖고 있는 병영도서관이나 사서의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러다 만난 이 책 <전쟁터로 간 책들-진중문고의 탄생>은 그런 갈증을 풀어주었다. 목마른 자를 샘으로 인도하는 작은 기적과도 같은 기쁨이었다. 이 책의 작가 몰리 굽틸 매닝도 여성이다. 미국 뉴욕 시 제2순회법정 산하 미국 항소법원 소속 변호사이다. 미국 올버니대학교에서 미국사로 문학사와 문학석사, 미국 예시바대학교 벤저민 N. 카도조 로스쿨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변호사다운 논리성과, 수십 쪽에 이르는 각주가 증명하듯 세밀하게 각종 문서들을 분석해서 이 글을 썼다. 여성의 섬세하면서도 냉정한 시각이 돋보인다. 전쟁이라는 참상 속에서 흥분하기 쉬운 남성의 거친 숨결을 거두게 하며 그녀는 차분하게 그러나 분명하게 객관적으로 말을 걸었다. 그 때 2차 대전 당시의 진중문고에 대해서 말이다. 책의 순서를 따라 주요 내용을 먼저 정리해 보았다.

 

1933510일 베를린의 <책 불태우기 행사>가 있었다. 이후 행사가 93건 더 진행되었다. 이 도서화형식(bibliocaust)의 주 대상은 아인슈타인, 토마스 만, 헬렌 켈러를 비롯하여 다양했다. 이에 반해 1934년 봄 파리에서는 <불 태워진 책들의 도서관>이 만들어졌다. 반대 측에서도 가만있을 수만은 없는 일이었다. 1935년에는 히틀러의 <나의 투쟁>이 드디어 국가 지정 필독서가 되었다. 1938년에 이르러서는 18개 분야 4,175, 565명의 작가의 전집을 금서로 지정했다.

이렇게 불 태워지고 또 지키려고 했던 책들 말고, 읽히기 위해서 책이 전선에 등장한 최초의 전쟁은 미국의 남북 전쟁이었다. 미군을 위한 책 보급은 1차 세계대전 당시 크게 향상되었는데 그 때 수 백 만권의 책은 우리 군대의 소속 병사들이 그대로 여전히 인간임을 증명해 주었다고 말할 정도로 의미 있는 것이었다. 1차 대전이후 전쟁부는 책을 훈련소의 필수품으로 지정했다. 내 기존 연구에서 보면 미국의 병영도서관은 1917년부터 시작됐다. 이후 발전적 과정을 거쳐 1940년 후반부터 육군은 수만 권의 책을 사들이고 훈련소용 도서관을 비롯하여 오락시설을 짖는 계획을 세워 시행해 나갔다.

전쟁에 깊숙이 개입하게 된 미국은 군에 사기 문제에 직면했다. 이를 지원하기 위해 도서관계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19411ALA는 연차총회에서 책을 전선에 보내기 위한 전국적인 도서수집운동을 선언했다. 미국의 사서들은 가장 좋은 무기와 갑옷은 책 그 자체라고 결론 내린 것이다. 194211,000만권 수집을 위한 전국 국방도서 캠페인 계획이 승리도서캠페인(Victory Book Campaign)이라는 이름으로 확대되어 19423400만권이 수집되었으나 150만권이 훈련소용으로는 부적합 판정을 받았고 루스벨트 대통령은 417일을 승리도서의 날로 지정했고 책은 민주주의의 상징이며 사상전의 무기가 되었다. 4월말에 이르러서는 거의 900만권의 도서가 수집되었다.

한편 19422월부터 전시도서협의회를 구상하여 대규모 주요 출판사 대표들과 업계 핵심인사들로 실무위원회를 구성했다. 여기에 출판사 대표들이 70명 이상 참석했고 필수 도서프로그램을 준비했다. 1943년 초까지도 간이 도서관도 설치할 수 없는 최전방에 있는 병사들의 특수한 필요에 부응하는 책들이 존재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전방의 책 지원 업무를 총괄했던 트라우트먼 중령과 그래픽 디자이너가 협의한 끝에 책을 개조하는 제안이 협의회에 제출되어 소위 진중문고(Armed Services Editions)'가 탄생했다. 진중문고는 미군의 표준 군복 주머니 크기를 감안한 페이퍼백이다. 이 군인만을 위한 특별한 페이퍼백은 매달 25종 이상 5만부, 연간 3,500만부를 인쇄하였는데 놀라운 성과를 낳았다. 군인들은 열렬히 환영하였고, 자신들의 마음을 움직인 작가에게 편지를 보냄으로써 독서하면서 느낀 상호 공감의 관계를 더욱 생생한 것으로 만들었다. 군인들에게 독서란 이렇게 매우 중요한 하나의 불안 탈출방식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1944<이상한 과일>, <영원한 앰버> 일부 도서에 금서조치가 내려졌고 검열에 반대하는 단체들과의 싸움도 지속되었다. 결국 군인을 민간인과 구별하여 읽을거리를 통제하겠다는 생각은 터무니없는 것이다라는 주장이 우세하여 이는 해제되었고 1,100만 미군에게 1,200종이 넘는 진중 문고가 보급되었다. 그 영향력이 얼마나 컸던지 군대에 등장한 가장 훌륭한 물건은 페니실린이고 그 다음이 진중문고라는 말이 전해졌다.

이후 나치 통제에서 벗어난 유럽 국가들에게도 미국의 책을 번역하여 배급하였는데 이를 위해 전시정보국협의회 내에 해외문고 주식회사를 설립했다. 1945272종을 시작으로 총 3,636,074권을 배송했다. 나치 포로수용소에서도 국제 YMCA를 통해 진중문고를 배급받을 수 있었다. 또 다른 한 쪽 연합국인 영국의 경우도 살펴 볼 수 있다. 영국은 19401219일 독일의 폭격으로 런던 시내 17개 출판사가 완전 파괴되었다. 이 때 100만 권 이상의 책이 소실되는 타격을 입었다. 이런 상황에서 1945년 미국의 진중문고와 닮은 페이퍼백을 발간하고 단돈 2펜스에 팔기도 했는데 상당한 인기를 끌었고 페이퍼백의 대중화에 기여했다.

전쟁이 끝나가면서 전시도서협의회는 미래를 고민하는 군인들을 위해 실용적인 논픽션을 포함하는 도서들을 새로 준비했고, 교육과정을 두어 직종별로 진급을 위한 시험을 실시하기도 했다. 19458월 이후에 많은 군인들이 제대하게 되자 사서들은 그동안 교전국 병사들을 위해 교육했던 것처럼 사회에 나온 그들을 돕기 위해 애썼다. 많은 사서들은 재향군인관리국과 적십자사와 협력하여 참전용사들에게 제대군인 원호법에 관한 내용을 알리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또한 그 혜택의 일환이 된 대학교육! 대학이라는 새로운 교육에 대한 도전은 제대 군인에게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이었다. 이러한 교육의 의미는 기존의 계급 장벽이 무너지고 계층 이동이 활발하게 나타나는 민주적 과정이 자리를 잡게 하는 희망적인 신호였다. 결과적으로 전쟁 후에 대규모로 발간된 페이퍼백과 제대군인 원호법(GI Bill of Right) 덕분에 전장해서 고생한 젊은이들은 새로운 지식인 중산층으로 형성되었고, 독서가 민주적인 대중들 사이에 더 넓게 퍼지게 된 것이다.

이상의 내용 정리에서 볼 수 있듯이 이 책은 진중문고의 역사를 통해 전쟁이라는 참혹한 환경 속에서 전쟁의 소모품이 아닌 인간으로서 인간다운 삶을 지켜낼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순간에 책이 있었음을 증언하고 있다. 총알이 빗발치는 참호, 그 가장 외롭고 고독한 순간에 위로가 되었던 책! 그래서 살면서 가장 기억났던 그 책! 그리고 어쩌면 전장에서 마지막 숨을 거둘 때까지 그와 함께 했던 책! 그리고 그 병사의 호주머니에 빠질 듯 드러나 있었던 책! 미국은 늘 민주주의와 정의를 앞세웠지만 미국이 옳았던 전쟁은 역사적으로 그렇게 많지 않았다. 그러나 적어도 군인들에 대한 대우는 다른 제국주의 국가와는 달랐던 것 같다. 미국은 군의 사기-복지-레크레이션 차원에서 마련된 MWR 프로그램을 통해 전방에 있는 장병들에게도 책을 지원했고 후방에는 병영도서관을 만들어 대학과정에 이르기까지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도 최근에는 군대 PX에서 책을 구입할 수 있게 되었다. 군용 책들의 단가가 낮다보니 군인들에게 적합한 새로운 판형이 나타났다. 소위 군용 페이퍼백 문고가 생긴 것이다. 미군에서와 같이 우리나라에서도 검열에 관한 문제가 야기된 바 있다. 금지 도서가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은 동서양이 다르지 않은가보다. 어쨌든 미국의 병영도서관의 역사와 발전이 한국에 미치는 영향도 적지 않다. 앞서 소개한 미국이 MWR 프로그램 차원에서 지원했던 병영도서관과 진중문고도 차원은 다르지만 우리 군에게도 적용되고 있다. 다만 그 질이나 수준에서는 미흡하지만 국가 간의 문화나 전통 차이가 있는 만큼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다. 미국은 모병제 국가지만 우리는 남북한이 대치하고 있는 상태라 징병제를 유지하고 있다. 즉 직업 군인과 일반 의무병과는 여러 제도면에서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다. 우리 군도 이제는 10년 넘게 현대화된 병영도서관 건립 사업을 추진하고 있고 일부 격오지에는 컨테이너 북-카페와 같은 새로운 형식의 도서관을 만들어 지원하고 있다. 오래 전 내 군대생활을 회고한다면 상전벽해다. 그래도 군대는 군대가 아니겠는가. 軍隊가 아니라 軍大라고도 말한다. 이제 군대에서도 능력껏 공부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니 전혀 틀린 말은 아니다. 우리 사회뿐만 아니라 군대도 저녁이 있는 삶이되기를 바란다.

마지막으로 이 책이 있게 한 미국의 기록문화에 경의를 표한다. 저자는 <찰스 스크리브너 출판사 기록보관소>의 문서와 편지들이 없었다면 이 책을 쓰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에게도 작게나마 병영도서관의 역사! 책과 한국 전쟁의 상호관계를 나타낼만한 기록이 있었을 것이다. 다만 어디에 있는지.... 모두 사라졌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일 뿐. 그것이 우리나라 병영도서관의 역사와 의미를 저술하고 싶었던 내가 못내 아쉬웠던 점이다.


명지대학교 문헌정보학과 교수 송승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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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포럼문화와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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