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 히로시(2017). 작가의 수지, 이규원 옮김. 북스피어



이 책의 출간 정보는 보았지만 인터넷 서점의 신간소개로 슬쩍 훑고 넘어가던 때였다. 트위터 타임라인에 모리 히로시라는 인물에 대한 트윗이 여럿 올라왔다. 그와 동시에 모리 히로시가 왜 듣보잡(듣도 보도 못한 잡놈의 약자. 유명하지 않은 사람을 무시하고 얕보는 칭호)이냐, 트윗한 사람이 모른다는 이유로 이 작가가 듣보잡 취급을 당하느냐는 반응도 많았다. 그제야 모리 히로시가 누구인가 검색할 생각이 들었는데, 검색할 필요도 없이 모든 것이 F가 된다의 작가라는 트윗이 따라왔다. 그 순간 누구를 듣보잡 취급하느냐!’는 말이 혀 끝까지 튀어 올라오더라.

모리 히로시는 일본 추리소설이 한국에 번역되어 나오던 그 초창기부터 번역 출간되던 소설의 작가다. 그 작품은 몇 년 전에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되었으며 그 몇 년 전에는 드라마로도 제작되었다. 그런 시리즈의 작가를 자신이 모르니 남들도 모른다고 취급하면 얼마나 얄팍한 지식인가. 그렇게 비판하는 나도 뒤늦게야 그 모리 히로시라는 것을 깨달았으니 양심이 찔린다.

책 저자가 그 모리 히로시라는 것을 몰랐다고 해도 이 책은 출판사 때문에 어차피 구입할 예정이었다. 출판사 때문에 장바구니에 담으려 하던 때, 다른 출판사에서 모든 것이 F가 된다로 시작하는 사이카와 & 모에 시리즈 10권을 다 출간한 기념으로 박스 세트를 내놓았고 거기에 홀려 구입했다. 시리즈를 구입하고 보니 장바구니에 담으려던 이 책이 그 모리 히로시의 수필이란다. 매번 챙겨 보던 출판사에다 막 구입한 소설 세트의 저자이니 안 살 수 없다. 그리하여 책은 일단 사놓고 보면 언젠가는 읽겠지 하며 미루다가 서평을 위해 뒤늦게 읽고 나서는 박장대소하며 왜 이제야 이 책을 읽었을까 후회하던 참이다.

아주 간단히 이 책을 소개하자면 공대 조교수 출신의 소설가가 자신의 수입 내역을 스프레드시트로 작성하여 일목요연하게 프리젠테이션하고, 자랑하는 논픽션이다.

모리 히로시는 나고야 출신으로 모교의 조교수로 근무하다 2005년 은퇴했다. 그리고 2008년에는 소설가 은퇴 선언을 하고, 지금은 신칸센도 닿지 않는 시골에서 하루 1시간 남짓만 집필하는 은퇴생활을 즐기고 있다. 이런 생활이 가능한 것은 은퇴자금이 충분히 모였기 때문이다. 20년간의 집필 생활로 278권의 책을 썼고, 책을 통한 수입은 15억 엔이다. 그리고 그 외에 영화화나 다른 매체화를 통한 수입, 그리고 전자책으로 받은 수입 등을 더하면 대략 20억 엔을 벌었을 것이란다. 원화로 간단히 환산하려면 뒤에 0을 하나 더 붙이면 되니 오늘(510)의 환율로 보면 200억 원이 안 될 것이고, 일주일 전의 환율로는 200억 원하고도 얼마 더 붙을 것이다. 그러니 시골에 땅을 사고 거기서 여유롭게 취미생활을 즐겨도 충분한 자금이다.

제목대로라면 모리 히로시는 수지맞는 직업생활을 보낸 셈이다. 그럼에도 이 작가는 베스트셀러 작가가 아니란다. 맞다. 통계상으로 보면 분명 베스트셀러 작가는 아니다. 일본에서도 한국에서도 손꼽히는 베스트셀러 작가라면 무라카미 하루키가 먼저 떠오르는데, 그만큼은 아니더라도 요시모토 바나나나 히가시노 게이고보다 모리 히로시는 이름이 훨씬 덜 알려진 매니악한 작가다. 그런 작가가 후배들을 위해 아주 친절하게, 작가라는 직업이 얼마나 시간을 투입하고 출판사와는 어떤 계약을 하며 책에 따라 어떻게 다른 계약을 하는지를 설명한 책이 이것이다. 읽다보면 후배소설가들을 위해서 쓴 책이라기보다는 자기 나름으로 지금까지 돈을 얼마나 벌었고 그 흐름이 어떻고 출판사나 다른 공저자와의 계약 분배는 어떻게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확인하고 밝히기 위해 쓴 책이 아닌가 싶다. , 작가가 자신의 수입 내역에 대해 푸념하듯 쓴 일반 에세이가 아니라, 학자가 추리소설가의 수입 내역 사례 데이터를 확보해 그 내용을 구체적으로 분석한 것에 가깝다. 그럼에도 원체 읽기 쉬운 글을 자주 쓰는 사람이라 그런지 학술논문이 아니라 에세이에 가까운 논픽션이 나왔다. 굳이 따지자면 딱 한 명의 데이터를 가지고 쓴 사례 분석이지만 그 내역이 아주 구체적이고 일반화 할 수 있을 내용이다 보니 다른 작가들이나 작가초년생들에게도 충분히 참고가 될 만하다. 오히려 그게 일본이나 한국에서는 문제가 되었던 모양이다.

책 말미에 실린 마포 김사장(북스피어의 사장 김홍민 씨)의 후기를 보면 적나라하게 작가의 수입 내역을 밝혔다는 이유로 속물이라는 소리도 여러 번 들은 모양이다. 아마 그런 글이 나오든 말든 모리 히로시에게는 별 타격이 없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오히려 돈에 대해 초연한 듯 보이는 그런 작가들의 모습이 더 속물적이지 않나 생각한다. 어쩌면 모리 히로시가 추리소설가가 된 계기나 그 수입 내역을 보고 부러운 마음에 도리어 더 괴롭힌 것이 아닌가라는 망상도 들었다. 후기에 소개된 것처럼 거짓말처럼 소설가 데뷔를 하게 되었니 그런 망상은 더더욱 강화된다.

모리 히로시의 데뷔는 초등학교 5학년인 딸이 읽던 추리소설을 보고 나도 이런 것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해 단번에 소설을 탈고하고 그걸 출판사에 응모했던 것이 시작이었다. 소설 탈고하는데 걸린 시간은 약 일주일. 그리고 출판사에서 연락이 오기까지 네 권 분량의 소설을 더 썼고, 이게 첫 출간작이자 대표작인 모든 것이 F가 된다를 포함한 사이카와 & 모에 시리즈였단다. 소설을 쓴 가장 큰 이유는 취미생활에 필요한 용돈을 벌기 위함이었으며, 15억 엔 이상을 벌어들인 지금은 본업이건 부업이건 둘 다 은퇴할 이유가 충분하다. 그리하여 책 후반부에 기술한 것처럼 취미생활인 모형 관련 모임 등에는 지금도 가끔 참여하며, 시골 정원에도 11 비율의 모형 철도를 만들어 놓아 즐긴다. 그 외에 차도 좋아한 덕에 여러 대 구입 했다가 보관하기 쉽지 않아 친구들에게 맡겼으며, 지금은 시골에서 정원일과 모형철도에 푹 빠져 지내고 그 날의 일과를 마친 뒤 일과 시간 중에 얻은 아이디어를 약 한 시간의 집필 시간 동안 풀어내는 모양이다.

부럽다. 하지만 그 부러운 생활 뒤에는 대학 조교수로서의 업무와 소설 집필이라는 부업의 균형을 아슬아슬하게 맞춰온 노고가 있었다. 결국 조교수를 먼저 은퇴하고 그 뒤에 소설도 은퇴하였지만 그 간의 자기 관리 노력은 상당했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 번역된 소설 기시마 선생의 조용한 세계를 보면 자전적 소설이 아닐까 싶은 정도로 공대에서의 생활이 책에 녹아 있다. 거기에 수필집 고독이 필요한 시간도 은둔자 기질이 있는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이런 걸 보면 20년이나 사회생활을 해온 것이 자신의 성격이나 성질을 억누르고 해온 것이니 그만한 보상은 필요하겠다는 생각도 든다.

    자신의 수입 내역을 통해 작가가 벌어들이는 수입과 지출의 내역을 보여주며, 예기치 않은 곳에서 웃음을 터뜨리게 만들며, 이게 지금까지 그렇게 많은 책을 써오고 출간한 덕인가 싶다. 남은 분량이 줄어드는 것이 참으로 안타까웠던 오랜만의 즐거운 책이었다.


전곡중학교 사서교사 김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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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장이 알아야할 거의 모든 것

우라야스 도서관 이야기(다케우치 노리요시 지음, 도서관운동연구회 옮김 / 한울, 2002)

 

 

우라야스(浦安)는 도쿄와 지바현의 경계에 위치한 작은 해안 어촌 마을이었다. 1969년 도쿄로 통하는 지하철이 개통되고 바다를 매립하여 조성한 신시가지를 중심으로 인구 유입이 늘어나면서 빠르게 도시화가 진행되었다. 1981년 시로 승격하였고, 1983년 디즈니랜드 개장과 인근에 대형 리조트가 들어서면서 우라야스는 도쿄의 위성도시로 급성장하게 된다. 시 승격을 앞둔 1980년 우라야스는 새로운 도서관 건립 계획을 수립하였고, 지역 주민들은 이런 도서관을 바라는 모임이라는 시민단체를 만들어 주민 중심의 도서관’, ‘어린아이에서 노인까지 자유롭고 쉽게 이용할 수 있는 도서관건립을 요구하고 나섰다.

저자인 다케우치 노리요시는 당시 우라야스가 속한 지바현의 현립중앙도서관, 우리나라로 치자면 지역대표도서관에서 10년을 일한 중견 사서로 중앙도서관장의 추천을 받아 우라야스 시립도서관 초대관장으로 취임한다. 이 책은 신도시의 새로운 공공도서관 건립을 준비하는 신참 도서관장의 좌충우돌 경험담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우라야스 도서관 건립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해가 1981년이니 지금으로부터 약36년이라는 긴 시간이 흘렀지만, 저자가 건립과정에서 경험하고 고민하는 바는 지금 우리나라의 도서관상황과 놀라울 정도로 많은 부분에서 공감대를 자아낸다. 타케우치 관장이 취임한 시기가 기본 설계 검토를 마치고 실시설계로 넘어가는 시점이었는데, 당시 일본에서도 도서관이 건립되기 전부터 관장을 채용한 사례는 대단히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부분이나,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관심을 갖기 시작한 도서관과 지역서점간의 상생 문제에 대한 고민하는 모습들이 그 예라고 할 수 있다.

공부방 문제도 중요한 이슈로 다루고 있다. 공부방 좌석이 부족하지 않느냐는 시의원의 질의에 대해 관장은 도서관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는 극히 일부 이용자보다 불특정 다수 사람들의 독서 의욕을 채우기 위해 한권이라도 더 많은 책을 둘 수 있도록 할애하겠다고 당당하게 답변한다. 그러면서 도서관을 방문한 한국도서관협회 엄 회장(역대 한국도서관협회장 가운데 성이 엄씨인 분이 없다는 것을 고려하면 초대 사무국장을 지내고, 당시 대한도서관연구회장으로 활발한 활동을 하던 엄대섭 선생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의 말을 인용하는데 당시 한국 도서관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 한국의 공립도서관은 학습관이라고 했다. 도서관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좌석관리가 역할이어서 일을 할 의욕도 없고, 아주 무능력한 사람이 머무는 직장이 되어버렸고 한다.”

도서관에 전문직이 왜 필요한가에 대한 문제제기, 시민 모임과의 관계, 도서관의 민간위탁, 침묵을 강요하는 도서관이 아닌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장으로서의 도서관, 시장 불러오라는 막무가내 이용자 응대, 불필요한 직원이 너무 많다는 악성 민원에 대한 답변 등 오늘날 우리나라 도서관장들이 한번쯤 겪어 봤음직한 고민들을 하나하나 상세하게 풀어내고 있다. 지역의 중앙도서관 관장으로서 개별 도서관 운영뿐만 아니라, 우라야스를 시민 누구나 걸어서 10분 이내에 도서관 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는 도서관의 도시로 만들기 위해 종합적인 계획을 수립하고 추진해 나가는 과정을 설명하는 부분도 흥미롭다.

관장과 직원들의 헌신적인 노력에 힘입어 개관 후 우라야스 도서관은 시민 1인당 도서구입비가 1,300엔으로 일본에서 처음으로 네 자리수를 돌파한 도서관이 되었으며, 1인당 대출 권수도 10권을 넘어 전국적으로 압도적 1위를 차지하게 된다. 개관 1년 만에 시민의 절반 이상이 회원으로 가입하고 소학교, 중학교 학생의 가입 비율은 무려 89%에 달하게 된다. 1985년에는 제1회 일본도서관협회 우수도서관건축상도 수상한다. 도서관의 성과를 시각적으로 표현하고, 경제적 효과를 금액으로 환산해서 홍보함으로써 여러 언론을 통해 널리 전파하는 마케팅 능력도 탁월하다.

새로운 도서관 개관을 준비하는 사람에게는 당면한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실마리를, 도서관 현장에서 힘들게 일하고 있는 사서에게는 따뜻한 위안과 동지로서의 격려를 전해주는 책이다. 저자는 후기에서 이 책을 도서관 근무자보다는 오히려 일반사람들이 읽었으면 하는 바람을 피력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도서관 현장에서 노력하는 사서의 고군분투를 조금이라도 이해해 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다. 하여튼 현재 공공도서관 관장인 사람과 앞으로 관장이 되길 희망하는 모든 사람들이 반드시 읽어야할 책인 것만은 분명하다.

  경기도사이버도서관 송재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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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크리모사

 

라크리모사 / 윤현승 / 로크미디어(2008)

 

  작가 윤현승을 처음 인지한 것이 언제인지는 기억하지 못한다. 확실하게 기억하는 건 친구가 추천해서 이 작가의 하얀 늑대들을 읽었다는 것과 그 책을 전권 구입했다는 것, 그리고 책에 소개된 저자 약력을 보고, PC 통신의 소설 연재 게시판에서 그 소설의 제목을 본 기억이 있다는 걸 떠올렸다는 내용뿐이다. 하얀 늑대들은 출간 직후인 2004년 즈음 읽은 것 같으니 그 기억도 그 쯤일 것이다. 추측만 남발하는 것은 그 당시의 기록이 지금은 하드디스크 속에 잠겨 있어 직접 확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얀 늑대들을 구입한 뒤, 다른 작품이 언제쯤 나올까 꾸준히 찾았는데 마침 로크미디어에서 노블레스 클럽이라는 총서명으로 판타지소설을 출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시리즈 3번째 책이 바로 라크리모사였다. 로크미디어의 노블레스 클럽은 다른 책들도 몇 권 가지고 있는데 절판 된 것이 매우 아쉬운 정도로 잘 만든 판타지소설들이다. 라크리모사도 시리즈의 다른 작품과 마찬가지로 소재나 전개, 소설 전체의 짜임새와 글, 그리고 그 결말까지 모두 다 흡족하게 마음에 들었다.

  이야기의 시작은 도서관 관장의 행동을 따라간다. 그 짧은 첫 머리에서, 바쁘게 움직이면서 지극히 사서적인 행동을 보이는 관장은 뭔가에 쫓기는 것 같다.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도서관의 지하 서고 어딘가에 있는 모양이다. 관장은 조연이지만 그 아래의 사서는 주연이며, 주 배경이 되는 도서관은 작지만 희귀서도 소장하고 있다. 인문 고양이든 사회과학 서적이든 이런 분야는 다른 분들이 좋은 책을 골라 올려주시겠지만 이런 소설 속의 도서관은 내가 찾지 않으면 누가 찾을까 싶은 생각이 먼저 들더라. 사서가 주인공이고 주 배경이 도서관인 소설은 그리 흔치 않으니 이 책을 제일 먼저 서평 목록에 올린 것도 당연하다.

  루카르도는 이탈리아의 소도시에 있는 도서관 사서이다. 관장과 루카르도, 이 둘이 도서관을 관리하고 있는데, 오래된 도서관이라 그런지 관장만 출입 가능한 지하 서고도 존재한다. 10대의 딸과 둘이서 오순도순 사는 가족이 무너진 건 어느 날이었다. 도서관 관장이 연쇄살인마라며 도망치라는 경찰의 연락, 도서관에 남아 있으라는 낯선이의 전화가 동시에 들이 닥친다. 그리고 딸은 저 낯선 여자와 함께 있는 걸로 보인다. 연쇄살인마라는 관장도, 딸을 찾아줄 수 없는 경찰들도, 그리고 딸을 데리고 있는 누군가도 믿을 수 없다.

  초반에는 추리소설로 흘러가던 이야기는 중반부를 넘어가서는 스릴러에 가까운 모습을 보인다. 아주 짧지만 섬뜩한 동화가 번갈아 등장하며, 결말부에는 왜 그 동화가 필요했는지도 나온다. 이탈리아의 희귀본 소장 도서관이라는 배경 때문에라도 장미의 이름같은 이미지를 떠올렸다가는 낭패를 보기 쉽다. 그 보다 더 잔혹하고 여러 복선들이 깔려 있는 이 소설은 마지막에 가서는 장엄한, 라크리모사를 연주한다.

  라크리모사는 가톨릭 장례 미사곡의 일부이다. 모차르트나 베를리오즈의 레퀴엠에도 포함되어 있다. 라틴어 사전에서 찾으면 weeping이나 tearful을 대응어로 보는데 눈물겨운, 눈물을 흘리는이란 뜻이다. 다 읽고 나면 귓가에서 그 레퀴엠이 들리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특히 마지막에는 편집의 묘미까지 더해서 장면의 긴장감을 극대화한다. 스릴러로 흘러가던 이야기는 중반 이후에 판타지 특유의 설정을 더하지만 그것이 스릴러를 한 숟가락 더 얹은 모양이었다. 마지막으로 읽은 것이 몇 년 전인지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오래되었지만 다시 펼쳐 들면서도 그 장면은 생생하게 남아 있었다

  잘 만든 소설, 잘 짜인 소설. 아버지와 딸의 관계나 형사와 사서의 관계, 그리고 관장의 이야기까지 보면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 같기도 하다. 읽는 내내 영화처럼 장면이 펼쳐지는데 상상력의 한계인지 도서관 내부의 모양은 역시 아일랜드의 트리니티 칼리지로 나타나더라. 작은 도서관이니 그런 장엄한 모습은 아닐 것인데. 하여간 도서관을 배경으로 했다는 점 서고도 등장하고 사서의 업무 능력도 사건 전개에 영향을 준다는 것도 그렇고 도서관과 사서를 소재로 한 소설을 소개하면서 맨 처음 둘만하다.

  생각난 김에 마지막 장면은 이 레퀴엠을 두 유명 작곡가의 버전으로 찾아 들으면서 다시 읽어 보려 한다. 마침 다들 310일을 흥겨이 맞으며 레퀴엠을 올려 주고 있으니 딱 좋다. 형사님의 이야기나 다른 등장인물의 이야기를 더 적고 싶었지만 그러면 내용 폭로가 되니 참고, 다음에 올릴 서평 도서를 찾으러 가야겠다.

 

전곡중학교 사서교사 김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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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거리 병풍을 뚫고 걸어 나온) 책들의 행진

 

 책들의 행진 / 이효경 지음 / 한국도서관협회(2014)

 


이 책은 미국 대학(컬럼비아대학과 워싱턴대학)에서 16년 이상 한국학사서를 하고 있는 이효경 선생이 사서로서 겪은 도서관 일과 자료, 그리고 이 속에서 성장하고 있는 자신에 관한 이야기다. 매튜 배틀스의 도서관, 그 소란스러운 역사가 연상되는 제목이다. 단지 현대 미국의 도서관이라는 제한된 공간이라는 것이 다르지만 신나고 흥미진진한 도서관 사서의 이야기라는 점에서는 다를 바 없다. 요즘 강의 시간에 말하곤 한다. 책이 좋아서 사서가 되겠다거나 서점을 운영하겠다, 는 생각은 안하는 게 좋겠다고. 실제 사서나 서점 주인은 책을 관리하고 서비스하는 일 자체가 중노동이라 개인적으로 편안하게 책 볼 시간이 없다. 그러려면 충실한 도서관 이용자나 독자로 남는 편이 나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필자는 처음부터 남다르게 책을 좋아하지도 않았고 사서를 목표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좀 더 객관적으로 직업적인 사서의 세계로 발을 들여놓지 않았나 생각된다.

 

필자는 한국에서는 시험 성적에 맞추어 대학에 갔고 미국에서는 좀 더 여유로운 삶을 갖기 위해 박사과정도 밟으려 했지만 미국의 엄격한 학사관리제도와 직업적 체계에 발목이 잡혀 바로 포기했다고 한다. 미국보다 박사과정이 엄격한 곳도 있겠지만 우리나라와 달리 미국은 현장 근무자가 박사과정을 밟는 것이 애초부터 불가능하고 무엇보다 직장에서도 종신재직권을 얻기 위해서는 6년여 간의 실적을 평가받는 엄격한 제도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사서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주제전문사서가 되기 위해서는 그 학문적 배경이나 연구 능력도 중요해서 일에 대한 열정과 노력이 없이는 견디기 힘든 직업이다. 필자가 있는 워싱톤 대학은 주제전문사서가 70명으로 거의 학과 당 1명수준이라고 한다. 여기서 한국 대학도서관의 현실을 생각하면 그저 답답한 마음이다.

 

멀리 이국 땅에서 한국학 사서로 일하고 있는 분들은 북미, 유럽을 거쳐 30여명에 이른다. 이 분들은 어쩌면 국위선양의 당사자이기도 하다. 프랑스 국립도서관 사서로 근무하고 있던 역사학자 박병선 박사는 1975년 외규장각을 발견, 이 책들이 한국으로 반환될 수 있는 결정적 계기를 만들었다. 더불어서 캐나다 토론토 대학의 김하나 사서를 비롯하여 북미의 사서들은 20087월 미국 의회도서관에서 독도표기 문제가 제기되었을 때, 바로 주제명표목표를 통한 영토전쟁을 결정적 승리로 이끌었다. 이 들의 협력의 바탕에는 크게 동아시아도서관협회가 있고 여기에 한국학자료분과위원회가 있었다. 또한 한국학사서들은 한국국제교류재단기금으로 한국도서관컨소시엄을 구성하고 <Ask Korea Studies Librarian>을 통해 전 세계적으로 서비스를 하며 그 위상을 높이고 있다. 우리나라 국립중앙도서관도 그 지원 활동을 확대하고 있다고 하니 다행한 일이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책거리 병풍에 관한 에피소드다. 19C 중엽 조선시대 이응록이 그린 이 병풍이 어떻게 미국까지 가게 되었는지 의문이다. 거기에 이 대학 도서관장은 이 병풍의 가치를 어떻게 알아내서 샌프란시스코 아시아 박물관에다 내다 팔 생각을 했을까? 어쨌든 중요한 것은 이 병풍이 고가에 팔렸고 그 돈을 다른데 쓰지 않고 이 대학도서관의 한국학장서 소장을 위한 기금으로 사용한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귀중본 소장과 다양한 이용서비스 요구에 대한 가치를 정책적으로 판단한 사례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외국에서 보면 한국학은 남한과 북한을 모두 포함한다. 그런데 한국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북한자료는 <특수자료취급지침>의 대상이 되고 잘못 사용하다가는 <국가보안법> 위반이 되기 때문에 자기 검열에 충실한 실정이다. 그런 점에서 필자가 방문한 일본의 조선대학교 도서관보다도 남한의 도서관이 사상과 이념의 경계로부터 자유스럽지 못하다는 지적은 아프게 다가온다. 필자가 한국학 사서로서 당연한 일이겠지만 그림책(만화)을 비롯한 다양한 북한 책을 수집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한국학 연구의 질적 발전을 위해서 고마운 일이다.

 

이 책 곳곳에는 필자의 사명감과 열정을 느낄 수 있는 사건들이 많이 있다. 서지학자로 상명대 교수였던 김종천 박사의 도움을 받아 개최한 해방 공간의 도서전시회(1945-1950), 아웃리치 서비스로 기획한 한국어 강연 시리즈 북소리는 결과만 보았을 때는 그리 큰 일이 아닌 것 같지만 그 과정을 통해 얼마나 열과 성을 다했는지 알 수 있었다. 학문적 전문성과 열정 못지않게 조국에 대한 깊은 사랑이 없이는 해 낼 수 없는 일이었다.

 

그 밖에 뉴욕 컬럼비아대학 한국학 사서로 일했던 고종 황제의 아들 의친왕의 딸인 이해경 선생 이야기, 한민족 디아스포라 역사자료 구축을 위한 자료센터 설립에 대한 제안, 한국을 사랑하며 한국인보다 더 한국학에 심취하고 있는 외국 학자들의 이야기는 재미와 반성을 동시에 갖게 한다. 특히 일생을 18C 조선시대 유학자 유형원 연구로 바친 제임스 팔레(James Palais) 교수, 한글 필사본으로 추정되는 고전 연작 소설 <벽허담 관제어록><하씨선행후대록>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러시아 사하족 출신의 울리아 코브야코바(Uliana Kobyakova) 같은 사람을 보면 경외감이 든다.

 

사서들은 책만 보면 멀미가 난다고도 하지만 사서는 누구보다 전문직으로 봉사를 해야 한다. 사서로서 봉사해야 할 일은 참으로 많지만 무엇보다 나는 글을 써서 자기의 지식과 생각을 많은 사람과 나눠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필자의 생각도 다르지 않았다. 우리는 생각하는 만큼 어휘를 구사할 수 있고, 아는 범위 내에서 사고한다. 어휘력과 사고력은 상호 연관성이 깊다. 몰랐던 단어를 알게 되는 것은 그 단어의 고유한 개념을 새롭게 인식하는 작업이 되어 사고의 영역을 넓혀준다. 아프리카 속담이라고 하던데 노인이 한 명 죽는 것은 도서관 하나가 없어지는 거라고 했던가. 크게 틀린 말이 아니다. 사서가 바로 그 오랜 경륜과 지혜로 만들어진 노인이 아니던가. 사서가 책과 사람을 가까이 하면서 얻는 그 지혜의 보물들을 나누는 것이 어쩌면 윤리 강령의 첫 번째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참으로 사서들에게 모범이 될 만한 귀한 책이다.

 

이효경 사서는 이를 개인적인 이유를 들어 설명했다. 글은 잊혀져가는 기억과의 싸움 속에서 재생해내는 값진 산물이며 사유의 놀이터로 어휘의 연습장으로 그리고 감동의 전이를 만끽하고 신나는 나만의 스토리텔링을 마련하는 장이라고. 맞는 말이다. 공감한다. 그러나 나는 여기에 앞서 말했듯이 공적인 이유를 하나 더 붙이고자 한다. 사서는 다양한 활동과 전문적인 연구와 지원을 통해 그 기록을 보존할 뿐 아니라 그 기록, 다름 아닌 역사를 써 나가며 널리 공유하는 사람으로서 글을 쓰는 것은 당연한 의무여야 한다. 그래서 사서는 그 빛나는 지혜를 많은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아름다운 업을 숙명처럼 지녀야 하는 사람이 아닐까?

 

명지대학교 문헌정보학과 교수 송승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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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포럼문화와도서관

2016년 벌써 3월이 지나가고 있네요.  포럼 문화와도서관 토요독서회(일명 토독회) 3월 모임 후기를 공유 합니다. 단순히 책을 쌓아 놓은 공간이 아니라 개인의 철학과 의지를 담아내고자 했던 조선 후기 당대 지식인들의 서재의 명칭에 얽힌 이야기를 흥미롭게 풀어낸 책입니다. 이번 후기는 송경진 박사님이 수고해 주셨습니다. 


토독회에서는 지금까지 읽어온 책들을 바탕으로 올한해 새로운 이벤트(?)를 만들어 볼려고 합니다. 다음달쯤 대략적인 윤곽이 그려질것 같은데 자세한 내용은 그때 다시 공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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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에 살다: 조선 지식인 24인의 서재
(박철상 저, 문학동네)

송 경 진

이 책은 저자가 국회도서관보 <서재이야기> 코너에 2008년 5월부터 2010년 12월까지 연재했던 글 중 일부를 추려 엮은 것으로, 정조 이후 인물 24명의 서재이름과 그 서재를 짓는데 얽힌 이야기 등을 통해 조선 후기 지식인들의 삶과 사상 등을 조명해보고자 하였다.

책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언론보도 등에 나타난 저자의 이력은 특이하다. 수출입업무를 담당하는 은행원이면서 재야의 고문헌 연구자가 저자의 현재 모습이다. 한학자였던 부친의 영향을 받아 고문헌 연구에 매진해 온 저자는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의 '완당평전'에 숨어 있는 오류를 지적한 글로 학계의 관심을 모으기도 했었다.

우리나라나 중국이나 글 읽는 선비들, 혹은 그 가문이랄 수 있는 사족(士族)들이 학문과 정치를 담당했던 국가이다. 그런 만큼 책은 모든 지식인과 행정가들의 철학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도구였지만 인쇄술이 발달한 이후에도 좀처럼 쉽게 구하기는 어려운 것이었다. 특히 상업출판이 성행했던 중국과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많은 경비와 노력이 들어가는 출판을 나라에서 관장했기 때문에 개인이 책을 입수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조선시대 지식인들이 책을 구하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임금으로부터 책을 내려 받는 것이었다. 이러한 책을 내사본(內賜本)이라고 하는데 이런 책을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이란 높은 관직에 있거나 좋은 가문에 속해 있는 사람들이었다. 물론 고위직도 아니었고, 화려한 가문의 일원도 아니었음에도 정조의 총애로 누구보다 많은 내사본을 수장했던 유득공 같은 사람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극히 예외적인 일이었다. 오죽하면 그는 그의 서재에 ‘사서루(賜書樓)’라는 현액을 걸었을까? 그런 까닭인지 모르겠지만 이 책을 보다보면 예전의 지식인들은 자신의 책을 소장할 서재를 갖는 것이 일생의 꿈이었으며, 그 꿈이 이루어지면 자신의 좌우명과 같은 글귀를 담은 서재의 이름을 지어 좋은 글씨를 받아 현액을 걸고, 그 서재가 지어진 내력을 기록한 글인 기문을 남겼던 것 같다.

이 책에 실린 24개의 서재이름은 모두 그들의 삶과 유리되어 있지 않다. 임금의 서재부터 가난한 시인의 서재까지 그들의 삶과 삶이 만들어 낸 철학이 배어있다. 몇몇 기억에 남는 서재를 소개한다.

임금의 서재인 정조의 홍재(弘齋)는 글자로는 ‘큰 서재’라고 볼 수도 있지만, 서명응이 지은 홍재기(弘齋記)에서 보듯 ‘뜻을 크게 가져야 한다’는 의미를 경계로 삼은 것이다. 호학의 개혁군주로서 큰 그림을 그리고 나라를 운영하고자 했던 정조에게 어울리는 서재이름이 아닐까? 이 책에 소개된 바로는 드라마로 잘 알려진 정조의 이름 ‘이산(李祘)’은 사실 ‘이성’으로 읽어야 한단다. 정조가 스스로 본인의 이름을 ‘이성’으로 부를 것을 알린 기록이 있다니 앞으로는 ‘정조 이산’이 아니라 ‘정조 이성’이 되어야 할 것 같다.

여항시인이었던 장흔은 평생 작은 집 하나를 짓지 못할 만큼 가난했다. 말년에 들어서야 열 칸 남짓한 초당을 지었는데 그 집의 서재에 ‘이이엄(而已广)이란 편액을 걸었다. 가난한 시인의 작은 초당에 무슨 책이 있었겠는가? 그래서 책의 저자는 엄(广)자처럼 속이 텅 빈 서재였으리라고 추측한다. 하지만 장흔은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지식인이 사회적 책임을 버릴 수는 없다고 여겼으며, 그런 사람은 지식인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비록 서재는 비었으나 기개와 의지는 빈 서재를 채우고도 남을 만한 인물이었던 것 같다.

천재라는 찬사를 들으며 출세가도를 달리다 천주학에 관심을 가졌던 것이 발각되어 긴 유배생활을 해야 했던 정약용의 호는 ‘여유당(與猶堂)'이다. 글자의 뜻만으로는 그 의미를 심각하게 이해할 까닭이 없어보이지만 사실 이 호는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여(與)가 겨울에 시내를 건너는 것처럼 하고 유(猶)가 사방에서 엿보는 것을 두려워하듯 하라”는 구절에서 왔단다. 여(與)는 큰 코끼리를 가리키고, 유(猶) 또한 주위를 살펴 조심스럽게 행동하는 동물을 이르는 말이라니 천주교 박해의 세월 속에 어떤 꼬투리라도 잡히지 않으려 노심초사했을 정약용의 모습이 보이는 듯하여 애처롭기조차 하다.

30년 가까이 서재를 꾸민 역관도 있고, 왕의 서재에 버금가는 4만권의 서적을 구비했던 경화세족의 서재도 있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서재는 산 속에 산방 하나를 깨끗이 지어놓고 ‘일속(一粟)’이란 이름을 붙였던 황상의 ‘일속산방(一粟山房)’과 이상적의 ‘해린서옥(海隣書屋)’, 그리고 이 책을 쓴 저자의 서재인 ‘수경실(修綆室)’이다.

일속산방은 ‘좁쌀만한 집’이란 뜻이다. 그러나 그의 방에는 온갖 도서와 제자백가의 책들이 수북하고 벽에는 세계지도조차 걸려 있어서 마치 부처가 말한 ‘수미산을 겨자씨 속에 넣는다’는 말처럼 온 세상이 다 들어있었다. 역관이었던 이상적은 중국의 문인들과 친교가 두터웠는데 그 중에서 특히 가까웠던 문인이 ‘해내존지기, 천애약비린(海內存知己, 天涯若比隣)이란 두 구절을 도장에 새겨 선물했다. 이 구절은 당나라 시인이 친구를 임지로 떠나보내며 지은 시의 일부로 “세상에 나를 알아주는 친구가 있으니, 하늘 끝 멀리 떨어져 있어도 이웃에 있는 듯 하네”라는 의미다. 이 구절에서 가져온 두 글자가 그의 서재 이름이 되었다. 한편, 이 책의 저자는 자신의 서재에 ‘수경실’이란 이름을 붙였다. 이는 당나라 시인 한유의 시구절인 ‘급고득수경(汲古得修綆)’에서 얻어왔다. 깊은 우물에서 물을 길어 올리려면 두레박줄이 길어야 하듯이 옛사람의 학문을 탐구하여 훌륭한 학자가 되려면 항심을 가지고 꾸준히 공부해야 함을 경계한 말이다.

끝으로 어쩌다보니 책모임의 구성원들이 모두 공부에 뜻을 둔 사람들이라 그랬는지 모두 한마음으로 위로 받았다고 고백한 책의 한 대목이 있었다. 다산이 유배 중에 가르친 황상이라는 제자(일속산방이란 서재의 주인이다)가 자신은 둔하고, 박하고, 미욱하여 공부를 잘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걱정하니 다산이 다음과 같이 말했단다.


“공부하는 사람에게는 세 가지 큰 문제점이 있는데, 네게는 이런 것이 없구나. 첫째는 외우기를 잘하는 것인데, 이런 사람의 문제점은 소홀히 하는 데 있다. 둘째는 글을 잘 짓는 것인데, 이런 사람의 문제점은 경박한 데 있다. 셋째는 이해력이 뛰어난 것인데, 이런 사람의 문제점은 거친 데 있다. 대개 둔하지만 악착같이 파고드는 사람은 그 구멍을 넓힐 수 있고, 막혀 있지만 소통이 된 사람은 그 흐름이 거침없어지며, 미욱하지만 연마를 잘한 사람은 그 빛이 반짝거리게 되는 것이다. 파고드는 것을 어떻게 하는 것이냐? 부지런하면 되는 것이다. 막힌 것은 어떻게 뚫어야 하느냐? 부지런하면 되는 것이다. 연마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 부지런하면 되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부지런해지느냐? 마음을 꽉 잡아야 하는 것이다.”


공부는 머리가 아니라 엉덩이로 한다는 구전 격언(?)만큼이나 그냥 믿고 싶은 대목이다. 세상 다른 일들도 공부하듯 ‘부지런’하면 ‘되는’ 일들이었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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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포럼문화와도서관

지난 반 년 동안 진행된 포문도 토독회의 책의 목록은 아래와 같다.

 

<독서국민의 탄생>(나가미네 시게토시 저, 푸른역사, 2010)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니콜라스 카 저, 청림출판, 2015)

<생각은 죽지 않는다>(클라이브 톰슨 저, 알키, 2015)

<한국도서관사연구>(백린 저, 한국도서관협회, 1969)

<문화공간의 사회학- 국가, 공공영역 그리고 도서관>(김세훈 저, 한국학술정보, 2009)

 

그동안 우리의 관심사는 도서관과 책 읽는 시민에서 도서관의 역사, 다시 책의 역사와 그것의 사회적 의미로 초점이 이동되었다. 그리고 논의는 그 경계를 한국사회 속으로 설정하였다.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한국 사회 속에서의 도서관을 살피기 위한 과정이었던 것 같다.

 

이번에 읽은 책은 <조선시대 책과 지식의 역사- 조선의 책과 지식은 조선사회와 어떻게 만나고 헤어졌을까?>(강명관 저, 천년의 상상, 2014)이다. 이 책을 통해 책이 처음 만들어지던 당시의 상황과 그 사회 속에서의 책의 의미는 어떤 것인지를 알아보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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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책과 지식의 역사

- 조선의 책과 지식은 조선사회와 어떻게 만나고 헤어졌을까?-

 

박수희

 

이 책은 고려와 조선을 이어 진행된 책의 제작과 유통과정을 밝히고자 한 것이다. 모든 내용이 완벽하게 고증되었다고 믿기는 어렵지만, 한문학자이며 조선시대 문화와 사회에 대한 많은 저서를 낸 저자가 수많은 사료를 제시하며 당시의 상황을 면밀하게 전하고 있다. 전체내용은 책의 제작에 필요한 활자, 인쇄출판 기관, 책의 제작과정, 유통, 가격, 서점, 도서관, 책의 수입과 수출 등을 두루 다루고 있는데, 각 챕터별로 독립적으로 서술하여 읽기가 매우 쉽다.

 

오래 전, 도서인쇄 및 도서관사라는 학부과목을 통해서 피상적으로 습득했던 내용을 이 책을 읽으면서 전혀 다른 각도로 바라보게 되었다. 활자와 책, 책과 도서관을 그저 지식이 축적된 물리적인 형태로 생각했던 것에서, 그것이 우리 사회의 변화 속에서 어떤 의미를 가져 왔는 지를 곱씹어보게 만들었던 것이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나는 몇 가지 오해를 하고 있었다.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가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졌으니 서적도 그만큼 많이 제작되었겠지...”

세종대왕의 한글창제 이후에는 한글로 된 책들이 주로 만들어졌겠지....”

금속활자 개발이 세계 최초이니, 그 이후 기술개발도 우리나라가 단연 앞서겠지...”

우리나라 서적이 그렇게 많았던 것은 활자기술과 쉬운 글자인 한글 덕분이겠지...”

 

그러나 아쉽게도 현실은 크게 달랐다. 우리가 믿고 있던 세계최초의 활자, ‘직지나 세계적 문화유산, ‘한글이 국민의 지식충족을 위해 널리 사용되기에는 몇 가지 걸림돌이 있었던 것이다.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국가가 활자제작과 책의 출판을 독점하였다.

둘째, 국가독점형 출판업은 서양의 경우와는 달리 그 기술적 진보가 매우 느렸다.

셋째, 알파벳과는 달리 한자는 활자제작이 매우 어렵고 복잡하였다.

넷째, 인쇄출판은 활자제작이나 종이에 비용이 매우 많이 들어 민간에서 출판을 시도하기 어려웠다.

다섯째, 국내에는 책이 유통될 수 있는 서점이 없었다.

 

책의 출판을 국가와 종교기관에서 독점하였던 것은 서양과 우리나라 모두 크게 다르지 않았다. 권력의 보유와 지식의 소유를 동일 시 했던 것이 전 세계적인 추세였기 때문이다. 기득권층은 이것을 다른 이들과 나누려 하지 않았고, 따라서 금속활자가 만들어진 후에도 이것이 바로 책의 대량생산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그들은 국가통치를 위해, 종교적 수양을 위해 책을 제작하였을 뿐, 지식의 확산을 위한 시도는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서양에서는 구텐베르크 시대로 오면서 상황이 변화되었다. 민간인이 활자를 제작하고 인쇄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를 고안한 것은 생산가격을 낮추어 인쇄물에 대한 민간의 수요를 충족하기 위함이었다. , 상업적 목적으로 민간에서 제작한 것이다. 이 때 찍어낸 성서는 많은 이들이 지식을 습득할 수 있게 해주었고, 이를 통해 특권계급의 지식을 해체하는 일이 시작되었다. 결국 구텐베르크 성서는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초석이 되었고 서양의 역사에 거대한 전환점을 가져오게 한 장본인이 된 것이다.

 

상업적 목적을 가진다는 것은 기술발전에 박차를 가하게 하였다. 좀 더 빠른 인쇄를 위하여 구텐베르크는 포도주 압착기를 응용하여 반 기계화된 인쇄방법을 개발하였다. 1520년 당시에 한 번의 조판으로 3000부 가량의 책을 발행하였다. 또한 구텐베르크의 인쇄기술을 습득한 기술자들이 유럽의 각지로 흩어져 이후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인쇄술이 전파되었다. 민간이 보유한 기술이 상업적 추진력과 맞물려 엄청난 발전을 가져오게 된 것이다.

 

반면, 국가의 필요에 의해 금속활자를 개발한 우리나라의 경우, 인쇄출판은 여전히 국가의 독점기술이었다. 우리의 금속활자는 대량인쇄를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다. 활자는 조판이 복잡하므로 인쇄물의 대량생산은 오히려 목판이 더 유리하였다. 금속활자는 새로운 수요에 신속하게 응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채택된 것이었다.

 

경쟁이 없는 독점기술은 그 발전 속도 또한 상당히 더뎠다. 당시 우리의 금속활자는 조판 틀에 밀랍을 부어 놓고 밀랍 위에 활자를 일일이 꽂아 넣어야 하는 것으로서 상당한 인력이 소요되는 수공업 방식이었다. 하루에 40장 정도를 인쇄할 수 있었으며, 하나의 책이 조판되어도 수 십에서 수 백부 정도만 인쇄할 수 있을 뿐이었다.

 

그러면 만일 조선에서 인쇄출판 권한을 민간에 허용했다면 더욱 효율적이고 경제성 있는 인쇄기술이 발달했을까?

 

그러나 국가 독점이 아니었다하더라도 문제는 남아있다. 그것은 라틴어와 한자로 대별되는 문자의 문제이다. 라틴 자모는 26개의 활자를 반복적하여 사용한다. 따라서 제작이 수월하며, 글자의 획수가 간단해서 주조하기 쉽고, 조판도 수월하다. 반면 한자는 필요한 글자가 수 천, 혹은 수 만자에 달하므로 주조할 때마다 적게는 10만자에서 많게는 30만자까지 제작해야했다. 또한 글자의 모양도 매우 복잡하므로 제작하기가 쉽지 않으며, 제작된 활자를 조판하는 작업조차도 수월하지가 않았던 것이다. 이런 작업은 수많은 비용과 인력을 필요로 하는 것이므로 민간에서 감당하기가 녹녹치 않았을 것이다.

 

또한 활자의 제작을 위한 재료가 매우 고가였고, 서적을 찍어낼 종이 또한 상상이상의 비용이 들기 때문에 민간에서 수 만자의 활자를 제작하거나 찍어낼 수 있는 여건이 되지 못하였다. 막대한 인력과 재력을 움직일 수 있는 국가에서만 수행할 수 있는 일이었다.

 

언어가 한자인 것이 문제였다면 세종대왕의 한글창제이후에는 달라지지 않았을까?

 

유감스럽게도 한글이 창제된 이후에도 한글만으로 작성된 책은 좀처럼 만들어지지 않았다. 한글은 번역본으로만 사용되었다. 한글은 한자로 쓰인 책을 이해할 수 있도록 언해본으로 작성된 것이 대부분이다. 백성을 교화하기 위한 책을 쉽게 번역하기 위해 사용한 것이다.

 

당시 국가는 주자소와 교서관이라는 기관을 통해 인쇄와 출판을 독점했고, 당대의 지식전달과 확산의 유일한 매체였던 책은 국가의 체제유지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국가가 발행하는 책을 통해 사대부는 지배계급으로서의 교양과 이데올로기를 갖추었고 이것이 조선체제를 장구하게 유지하는 중요한 수단이 된 것이다. 서적의 유통도 관의 주도에 따라 이뤄져서 중앙의 고급관료와 종친 또는 지방관청에만 무상으로 분배되었으며, 일반 독서인구의 수요에 대한 배려는 거의 없었다.

 

금속활자의 사용으로 조선시대 인쇄물 종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활자를 국가가 소유했기에 지배층이 지식을 공급하고 유통하는 주체가 되었다. 그들은 어떤 책을 찍을 것인지를 결정했다. 우리가 생각하는 바와 같이 그들은 체제유지를 위한 책만 찍어냈던 것이다.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이 지식독점을 해체하는 것으로 나아가는 동안, 조선의 금속활자는 중세의 질서를 고착화하는 방향으로 진행하고 있었다.

 

책의 유통을 위해서는 서점이 마련되어야하는 데 이 또한 추진이 어려웠다. 일부는 책을 상품으로 파는 것은 잘못이라는 생각이 만연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서적의 가격 자체가 매우 고가였으며, 공급량이 부족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실행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서점설치에 대해 시행세칙이 마련되기는 하였으나 실제로 19세이 이전의 서점은 흔적은 확인하기 어렵다. 새로운 서적의 유통구조가 필요했으나 이를 타개하기는 어려웠던 것이다. 결국 서적인쇄를 국가가 독점한 것이 민간 인쇄출판업의 발달을 막았고, 서적 공급량을 확대하는 데도 장애물이 되었다.

 

그러나 동아시아의 다른 나라는 좀 달랐다. 중국은 송, , 청대에 이르는 서적상과 서점가 발달이 있었고, 일본도 1620년대에도 서점, 출판업자가 경도에만 14곳이나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활자가 진작부터 발전한 우리나라만 삼국 중에 유일하게 서점이 없었던 것이다.

 

서점이 없었다면 도서관은 존재했을까?

 

우리나라는 고려 때부터 서적의 인쇄와 수장에 열심이어서 중국으로부터 책을 다수 수입하는 노력을 보였다. 오히려 중국에 없는 이본이 고려에 많이 소장되어있어, 중국이 고려에 책을 요구하기까지 했던 것이다. 아쉽게도 이렇든 각고의 노력을 했던 고려의 국가장서는 여러 전쟁 중에 소실되었다.

 

조선의 홍문관은 온 나라의 책을 거두어 총목을 작성하고, 모든 책의 수정, 관리, 보관 등을 담당했으며, 임금의 자문에 응하며, 임금의 잘못을 비판할 수도 있었다. 국가가 발행한 모든 서적을 반드시 경복궁 근정전의 융문루와 융무루에 간직하도록 했다. 국가 발행 서적 뿐 아니라 필요한 도서 목록을 적어 중국의 서점에서 구입하거나 중국에 하사를 요청하기도 하였다. 또한 개인이 소장한 책을 국가에 바치도록 권장하며 이들에게 상을 내리기도 하는 등 다양한 방법을 서적 수집에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당시의 도서관은 궁중에 소재하였으며, 궁중 출입이 허락된 관료들만 접근할 수 있었다. 왕의 경연에 필요한 도서를 요청할 경우에도 환관이 특별한 표신을 제시해야 도서관에 들어갈 수 있었다. 관료들 역시 도서관 출입이 무제한적으로 자유로웠던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서적이 곧 사회와 문화를 만든다.”

 

저자는 서적이 곧 사회와 문화를 만든다.“고 하면서 책과 지식의 의미를 되새겼다. 우리나라에서 여러 가지 이유로 국가가 인쇄출판을 독점하였다 하더라도 그것이 권력자의 체제유지가 아니라 더 많은 지식을 국민에게 보급하기 위한 용도로 되었다면 우리의 사회는 조금 더 달라졌을지도 모르겠다.

 

조선시대에 우리는 일본의 끊임없는 요구에 의해 대장경을 하사하곤 하였으며 인쇄출판 문화로 동아시아의 또 다른 중심이 될 정도로 지적사회기반의 수준을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특정 계층에 독점되었던 서적은 임진왜란이라는 전쟁으로 인해 하루아침에 잿더미가 되었다. 일부에게만 열려있던 지식이었기에 안전한 보존이 더욱 힘들었던 것이다.

 

한편 우리의 수많은 서적, 그리고 활자까지 약탈해 간 일본은 그것을 자국문화를 발전시키는 계기로 삼았다. 지식이 새로운 사회변화의 근간이 되어 주었기 때문이다.

 

서적이 사회와 문화를 만든다. 서적이 전달하는 지식이 사람들을 깨운다. 새로 깨어난 사람들이 또 다른 생각을 만든다. 그 예로, 조선시대에 천주교 서적의 수입은 자생적 천주교 신자를 출현하게 했다. 구텐베르크의 성서는 더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읽고 생각하게 만들었고, 종교개혁을 낳았다.

 

조선시대 지식은 이 책에서 설명하는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하여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파되지 못하였다. 그러나 활자를 개발하고, 문자를 만들고, 여러 서적을 입수하는 노력을 부단하게 추진한 것은 우리 선조들이 이미 지식보유가 국가 발전의 근간임을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다만 당시 권력층이 지식에 대한 보수적 견해를 가지고 있었고, 체제유지 우선이라는 견고한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 문제였을 뿐이다.

 

이런 측면에서 현재 우리의 인쇄출판, 지적접근, 서점, 도서관의 의미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동안 그저 우리의 직업으로서 출판, 서적상, 도서관의 활동과 성과에만 관심을 기울이던 것에서 잠시 한 발짝 물러나 이 사회에서 지식에 접근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 지, 그것을 위해 우리가 앞으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야할 지를 고민해보는 것은 어떨까. 이것은 토독회가 그동안 진행해 온 흐름, 즉 독서-생각-도서관의 역사-도서관과 현 사회라는 맥락과도 유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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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이어 다음 토독회(311일 금요일)에서는 <서재에 살다: 조선 지식인 24인의 서재이야기>(박철상 저, 문학동네, 2014)를 통해 조선시대의 지식인 개인의 책에 대한 의미를 살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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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포럼문화와도서관

2016년 1월. 새해 첫 토요독서회(줄여서 토독회) 소모임에서 함께 읽은 책은 ‘문화공간의 사회학’(김세훈 저, 한국학술정보. 2009)입니다. 지난해말부터 토독회에서는 우리나라의 도서관史에 관한 책과 논문들을 중점적으로 읽어 왔는데, 이 책에서는 구한말 서구 근대도서관의 출현부터 90년대까지 도서관의 시대적 변천사를 수록하고 있어 이달의 책으로 선정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모임에서는 애초에 의도했던 도서관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 보다는 공공영역으로서의 도서관의 가치와 의미를 고민해 보는데 보다 많은 시간을 할애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도서관사라고 하는 것이 단순한 역사적 사실에 대한 지식얻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함께 연관지어 볼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완전히 동떨어진 내용이라고 할수는 없을것 같습니다.

토독회 모임날 개인적인 사정으로 뒷부분에 잠깐 참여했던터라 모임때 논의되었던 내용과는 별개로 이 책을 읽고난 개인적인 소감을 지면을 통해 함께 나누어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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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공간의 사회학 - 국가, 공공영역 그리고 도서관


 

송재술

 

도서관은 왜 무료인가?’, ‘왜 공공의 세금으로 운영해야 하는가?’, ‘왜 사람들이 오기 쉬운 교통이 편리한 곳에 있어야 하는가?’, ‘왜 먹고 살기도 힘든데 도서관을 지어야 하는가?’, ‘왜 책 안좋아하는 사람들도 도서관으로 끌어 들여야 하는가?’

도서관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라면 이런 고민들 한번쯤 해봤을 것이다. 사실 도서관이 좀 유별난 구석이 있다. 공공의 예산으로 운영되는 여타의 기관들 - 박물관이나 미술관, 공공체육시설, 공원 등에서 돈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그게 잘못되었다고 얘기하진 않는다. 하지만 도서관은 아예 법에서 자료 복사나 강습 같은 일부 예외적인 사항을 제외하고는 사용료를 받을 수 없도록 명시하고 있다.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가 이 책을 쓴 목적은 공공영역이라고 하는 것이 국가 권력과 어떠한 관계 속에서 발전해 왔는지를 알아보는 것이다. 도서관이 무료인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쓰인 책은 아니다. 하지만 책에서는 공공도서관이 처음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한 1900년대 초기로 거슬러 올라가 그 어렴풋한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1900년대를 전후한 일제 강점기 시기. 이 시기는 사사로운 영역에 머물러 있던 개인들이 공공의 영역으로 나오기 시작한 때이다. 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공공영역의 개념을 명확히 하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저자는 공공영역의 개념을 국가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의사소통이 일어나는 공간이며 동시에 공공의 이해관계에 대하여 비판담론 및 여론이 형성되는 공간으로 설명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개인들을 공공의 영역으로 끌어내는 매개자로서 제도화된 공간이 존재하는데 근대 초기에 도서관을 비롯하여 박물관, 극장들이 그 역할을 담당했다. 저자는 이 가운데 도서관을 중심으로 공공영역의 발달 과정을 파악해 보고자 하였다.

 

도서관은 그 시설을 통하여 추구하고자 하는 사회의 관심과 지향이 담겨져 있는 공간이며 동시에 이와 관련된 제반 사회제도와 그것들을 개선하고자 하는 실천이 어우러진 공간이다. 뿐만 아니라 그러한 사회의 관심과 지향을 자기 나름대로 해석하고 평가하며 받아들이는 개인들의 행위가 일어나는 공간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도서관은 외형상 나타나는 장소로 존재할 뿐만 아니라 다양한 의도와 행위가 서로 만나는 추상화된 공간으로 존재한다.

- p. 20~21

 

저자는 도서관을 단순히 자료를 모아두는 장소의 개념에서 확장하여 도서관 사회적 기능, 즉 개인들이 도서관에서 수집한 정보를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 환경을 이해하고, 문제점을 찾아 개선해 나가는 실천적인 행위가 일어나는 공간으로 바라보았다. 하버마스가 정의한 공공영역의 개념을 그 자체로서 증명하는 대표적인 기관이자 건강한 국가를 유지하고 발전시켜 나가기 위한 견제와 협력 대상으로서 도서관을 바라 본 것이다.

도서관의 이러한 가치는 현재 종로도서관의 전신이자 사회 운동 차원에서 본격적인 도서관 설립 운동에 큰 영향을 주었던 경성도서관의 설립 취지를 설명한 글에서도 잘 나타난다.

 

조선 사회에 대한 인식이 조선 사회만을 알아서는 불가능하고 세계의 상황을 알아야 하며, 세계 상황에 대한 인식 없이는 한 가족의 가정생활 또한 충분히 경영될 수 없다

  - p. 96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1920년대 이후 일제에 대항하는 사회교육 시설로서 조선인의 민중 계몽 운동의 일환으로 전국 각지에서 도서관 설립 운동이 활발히 나타나기 시작한다. 저자는 이 시기 도서관 운동을 다음의 세 가지 측면에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첫째, 장서도 부족하고 이용률도 낮았지만 도서관 건립을 추진하면서 지역 주민과 청년 단체들이 의논하고 토론하는 과정에서 이미 공공영역으로서 도서관의 기능이 작동했으며, 둘째 도서관은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구질서와 비견되는 새로운 질서를 나타내는 공간이라는 점, 셋째 개인적인 독서활동에서 독서 공중으로의 전환을 가져왔다는 점이다.

이와 같은 도서관의 기능으로 인해 비판의 토대가 되는 기반, 곧 자기 자신 및 세계와의 의사소통을 통하여 비판 공중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배경을 마련해 주었다고 평가하면서 공공영역의 기초가 마련된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서두에 언급했던 도서관이 무료로 누구나 자유롭고 평등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하는 이유도 바로 이러한 초기 도서관이 갖고 있던 공공영역으로서의 사회적 가치에서 그 근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해방이후 이전까지 민립으로 만들어진 도서관들은 관립공공도서관 체계로 대부분 바뀌게 되는데 이 기시부터 도서관 운영에 국가의 개입이 전면적으로 이루어지게 된다. 1955년 대학설치 기준령, 1963년 도서관법 제정, 1964년 교육자치제 실시, 1967공공도서관설치 5개년 계획등이 추진되면서 도서관이 큰 폭으로 증가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공공영역으로서 도서관의 가치는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6~70년대를 거치면서 과거 계몽을 통한 개인의 비판 역량 강화라는 도서관의 기능이 서로 분리되는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하한 것이다. 이는 도서관을 단순히 근대화에 필요한 지식 능력을 갖춘 인력을 배출하는 기능 공간으로 의미를 축소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도서관의 모습인 공부방의 이미지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8~90년대에 들어 도서관법 개정과 국가 지원의 확대 속에 도서관은 양적으로 크게 증가하였다. 또 서비스 개선 차원에서 개가 및 관외 대출운동’, ‘입관료 폐지운동등을 통해 사람들의 자유롭고 평등한 접근을 보장하기 위한 운동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주민도서실 운동’, ‘작은도서관 운동도 이 시기에 시작하고 있다. 하지만 이전 시기부터 나타났던 공부방, 자습실로서의 도서관 기능이 여전히 이어지면서 과거 도서관을 통해 사사로운 영역에서 공공의 영역으로 나왔던 개인들은 다시 도서관을 통해 각자의 사사로운 영역으로 후퇴해 들어갔다고 비판하면서 저자는 절반의 성공에 그친 시기라고 평가하고 있다.

책에서는 마지막으로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는 자율성을 가진 행위 주체로서의 개인에 대한 재발견을 통해 교육 기능과 비판기능을 통합해 나감으로써 공공영역의 재활성화를 도모할 필요가 있다는 제언으로 글을 마무리 하고 있다.

이 책이 쓰인 시기가 2002년이니 그 후로 이미 14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 도서관의 공부방 이미지는 많이 개선되었다. 최근에 개관한 여러 도서관들은 별도의 공부방을 두지 않고 있기도 하다. 도서관수는 훨씬 더 많아졌고, 시설이나 서비스도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아졌다. 하지만 왠지 모를 허전함 같은 게 있는데 아마도 그 원인이 이 책에서 말하는 초창기 도서관이 갖고 공공영역으로서의 가치가 점점 희석되어가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도서관도 사회 필요에 의해 만들어 졌고 기대되는 역할이 달라지다 보니 시대에 따라 그 가치나 기능은 조금씩 바뀌어 갈 수 밖에 없다. 그래도 도서관이 가진 본질적인 가치, 사사로운 개인들을 공공의 장으로 끌어내는 장치로서의 가치를 쉽게 포기하기에는 아직 너무 이른감이 있다.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해가는 현 시대에서 도서관도 시류에 휩쓸려 겉으로 드러나는 성과에만 연연해하는 모습들을 간혹 보게 된다. 이 책은 도서관의 근본으로 거슬러 올라가 도서관이 우리 사회에서 어떻게 자리 잡고 서 있어야 하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은 박사학위 논문을 책으로 발간한 것으로 학술연구정보서비스(http://www.riss4u.net/)에서 해당 논문의 원문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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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포럼문화와도서관

얼마전 한 신문기사에서 백린 선생님의 부고 소식은 접했습니다. "6·25전쟁 중 규장각 도서 보존한 '사서의 표상' 故 백린 선생"이란 제목의 기사에서는 한국 사서 1세대를 대표하는 백 선생님이 6.25 발발 직후 규장각의 고서를 부산으로 무사히 옮겼던 내용과 휴전후 도서관의 복구, 일본으로 반출된 귀중 문서의 반환 등 생전의 업적을 소개하였습니다.(관련기사:  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5110974501)

 

지난 9월부터 포럼 문화와 도서관 토독회에서 백린 선생님이 집필하신 '한국도서관사연구'를 다루고 있던터라 부고 기사가 더욱 안타깝게 느껴졌습니다. 지난 9월과 10월 두달에 걸쳐 토독회에서 '한국도서관사연구'를 읽고 토론한 내용을 명지대 송승섭 교수님이 후기를 작성해 주셨습니다. 다시한번 백린 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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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린 선생의 한국도서관사연구를 읽고...

 

명지대학교 문헌정보학과 송승섭

 

두 달 전부터 백린 선생의 <한국도서관사연구>를 읽으며 이런 저런 상념에 젖었다. 왜 이 책은 이렇게 어렵게 쓰여 졌을까? 왜 백린 선생이후에 <한국 도서관사>를 새롭게 쓰신 분은 없었을까? 왜 이 책의 참고문헌과 인용문은 온통 日書에 의존했을까?
이 의문들에 대해 스스로 찾아낸 답은 이렇다.

먼저, 백린선생의 이 책이 어렵다는 것은 국한문 혼용에 고어체이고 논문 서술 방식이어서 일반적으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대중적 학술 서적(교과서)과는 차이가 있다.

다음, <한국도서관사>를 더 쓰신 분이 없다는 것은 시대별 도서관사 연구가 아닌 말 그대로 通史가 없다는 뜻이다. 통사란 말 그대로 우리나라 도서관의 전 시대를 다루고 전 지역에 걸친 종합적인 역사의 기술을 의미한다. 이 책의 본문은 153쪽에 그치고 시대별로 의미 있게 언급된 도서관도 손에 꼽을 정도이다.

마지막으로 많은 일서를 인용한 것은 필자가 일제 강점 시기에 공부를 해서 일본어에 익숙했고 일본이 도서관 분야의 선진 문명과 사상을 일찍 받아들였기 때문이었을 것으로 판단되지만 아쉬움이 남는다.

또 한 가지 총체적인 이유를 찾는다면 한국의 도서관사 연구가 대부분 서지학자들에 의해서 이루어졌다는데 있다. 서지학도 여러 종류가 있지만 기본적으로 책(원문)을 대상으로 조사, 분석, 연구해서 기술하는 학문이다. 따라서 그 원문의 출처에 대한 考證校勘이 기본이 되기 때문에 그 기술 방식이 딱딱할 수밖에 없다.

이런 여러 가지 이유들은 단지 이 책을 읽는 어려움뿐만 아니라 한국도서관사가 지금까지 제대로 편찬되지 못한 까닭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유야 어찌되었던 이제까지 읽을 만한 한국도서관사가 없다는 것은 이 분야에 몸담고 있는 후학으로서 책임감을 느끼게 하는 일이요 부끄러운 일이다. 어느 분야이건 간에 역사란 자존감의 바탕이요, 정체성의 다른 이름이며 자신을 들여다보는 거울 같은 존재이다. 우리는 그 거울을 들여다보며 반성도 하고 미래를 개척하기도 한다. 그러니 제대로 된 역사 자체가 없다는 데에 이르면 여기에서 무슨 철학이니 사상이니 하는 것들이 나올 수 있겠는가. 이에 우리가 우리 도서관과 학문의 기본과 정체성을 바로 정립하고자 한다면 무엇보다 제대로 된 역사를 찾아내서 이를 누구나 쉽게 배우게 하는 일이다. 당면하고 시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간고한 마음이 가득한 차에 뒤늦게 한 신문의 부음 보도를 보게 되었는데 다름 아닌 지난 2개월여 내 마음 속에 머물렀던 백린 선생의 기사였다. “이런~~ 돌아가시지 않았을까 생각했는데...” 잠시 탄식이 스쳐갔다. 20여 년 전 그분의 강의를 들었던 그 시절의 강의실이 보이는 듯 했다. 큰 키에 마르고 강단 있게 보였던 그 분의 마지막을 이렇게 보는구나. 참으로 아쉬웠다. 우리 사서들이 선배 대접을 참 못하는구나 하는 송구함이 더 크게 느껴진 순간이었다.

길지 않은 신문 기사지만 살펴 볼 것이 많았다. 다음은 소회와 함께 정리한 대략의 내용이다.

 

한국의 사서 1세대를 대표하는 백 선생이 규장각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48년 서울대 도서관 사서로 부임하면서부터다. 그는 19506·25전쟁이 발발하자 규장각의 고서를 무사히 부산으로 옮기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북한군의 1차 서울 점령 당시 그는 북으로 반출할 도서목록을 제출하라는 요구에도 지연작전으로 장서를 끝까지 지켜냈다. 195012월엔 승정원일기등 국보급 자료 1만여 권을 일일이 새끼줄로 엮어 미군 트럭을 통해 부산행 화물열차에 실어 보냈다. 생전엔 혹시 책이 한 권이라도 없어질까 신혼에도 반년이 넘도록 책 궤짝 위에서 잠을 자며 지켰다며 부산 피란시절을 회고했다. “ 이 내용과 함께 ”1965년에는 규장각을 정리하던 중 이토 히로부미가 최치원의 계원필경등 고서 1028권을 일본으로 반출한 사실을 담은 1911년 조선총독부 문서를 처음 발견했다. 이들 자료 대부분은 1965년과 2010년 두 차례에 걸쳐 한국으로 반환될 수 있었다.“ 는 그의 주요 공적도 소개됐다.  이어서 틈틈이 공부를 놓지 않고 연세대에서 도서관학 석사 학위를 받고, 각 대학을 다니며 강의했다는 내용과 그가 늘 후배들에게 사서는 단순히 책을 분류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책의 내용까지 파악할 능력이 있어야 진짜 사서라며 실력 있는 사서가 돼야 교수들과 대등한 위치에서 제대로 봉사할 수 있다고 강조한 내용을 통해 그의 직업적 소명과 학구열 그리고 후배 사서에 대한 진심어린 충고를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이어 1969년 미국 하버드대의 초청으로 1년간 연구원 생활을 했고, 1973년에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한국학 도서 정리와 자료 전산화를 이끌어 하바드 옌칭도서관이 미국 최고의 한국학 도서관으로 자리 잡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사실과, 1991년 은퇴 후에도 미국 보스턴에 머물며 미주 한인 이민 100주년을 기념하는 뉴잉글랜드 한인사등을 펴냈다는 업적도 소개했다. 이 기사는 우리나라 규장각을 지켜내고 한국도서관사를 펴낸 위인의 마지막 길을 역사 속에 남겨준 소중한 의미를 담고 있다. 사서로서 서지학자로서의 훌륭한 삶을 살았던 위인에 대한 재조명은 더 큰 의의를 발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그렇다. 박병선 박사도 그렇고, 엄대섭 선생도 그랬다. 이렇게 느닷없는 부음 소식은 일생을 도서관계의 발전에 바친 선배 사서에 대한 선학에 대한 죄송한 마음과 스스로의 부족한 능력을 깊이 깨우치게 한다. 어쨌든 그러한 마음은 나중에 갚기로 하고 일단 백린 선생의 저작들을 좀 깊이 있게 살펴보기 위해 자료조사를 해봤다.

백린 선생은 1959년부터 저작을 남기기 시작했는데 1962<奎章閣藏書硏究>로 석사학위를 받은 이후부터는 더 많은 논문을 발표해 1972년까지 44편의 논문을 남겼다. 이후 1969년 미국으로 건너가 하버드 대학에서 연구원 생활을 하고, 몇 년 후 옌칭도서관에서 자리를 잡은 이후로 국내에서는 별다른 저술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다. 다만 몇 번인가 백린선생 초청 강연회가 국내에서 열렸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기록으로 확인된 것은 20046.16일 서울대에서 “6.25동란과 규장각이라는 제목으로 강연한 것이 마지막이 아닌가 생각된다.

 

백린 선생 저작 목록(1959-1972)

 

논문 제목

발행처

연도

1

[국내학술기사]香山實錄曝移安于茂朱赤裳山形止案/白麟 國學資料. 2('72.4)

文化財管理局藏書閣

1972

2

[국내학술기사]韓國古地圖/白麟 圖書館報. 8

서울대학교부속도서관

1972

3

[국내학술기사]한국의고활자,손보기저<서평>/白麟[] 한국사연구=ThejournalofKoreanhistory.7

韓國史硏究會

1972

4

[국내학술기사]집현전과장서각/백린 도서관. 155('71.4)

대한민국 국립중앙도서관

1971

5

[국내학술기사]집현전과장서각/백린 도서관. 156('71.5)

대한민국 국립중앙도서관

1971

6

[국내학술기사]朝鮮後期活字本形態書誌學的硏究./白麟 한국사연구. 4('69.6)

韓國史硏究會

1969

7

[국내학술기사]內賜記宣賜之記하여/白麟 국회도서관보. 6,8('69.10)

대한민국 국회도서관

1969

8

[국내학술기사]LibraryMovementintheEnlightenmentPeriod/白麟 KOREA JOURNAL. 9,10('69.10)

Korean National Commission for UNESCO

1969

9

[국내학술기사]開化期韓國圖書館運動 /白麟 亞細亞. 1,6('69.7·8)

亞細亞社

1969

10

[국내학술기사]韓國書誌關係文獻目錄/白麟 書誌學. 2('69.6)

한국서지학회

1969

11

[국내학술기사]中國上古時代文庫典籍하여/白麟 도서관. 24,1,131

國立中央圖書館

1969

12

[국내학술기사]中國上古時代文庫典籍하여/白麟 도서관. 24,2,132

國立中央圖書館

1969

13

[일반도서]韓國圖書館史硏究/白麟編

韓國圖書館協會

1969

14

[국내학술기사]漢代南北朝時代圖書館史/白麟 도협월보. 10권 제2(19693)

韓國圖書館協會

1969

15

[국내학술기사]朝鮮後期活字本形態書誌學的硏究.,宣祖25~隆熙4사이의奎章閣所藏圖書中心으로/白麟 한국사연구= The journal of Korean history. 3

韓國史硏究會

1969

16

[국내학술기사]대학도서관의綜合目錄과인쇄카드에대한제언/白麟 圖書館報. 6

서울대학교부속도서관

1968

17

[국내학술기사]目錄學槪念古書目錄記述問題<特輯>/白麟 도서관. 128('68.9)

대한민국 국립중앙도서관

1968

18

[국내학술기사]伊藤博文貸出奎章閣圖書하여/白麟 書誌學. 1('68.9)

한국서지학회

1968

19

[국내학술기사]公共圖書館役割/白麟 남산도서관보. 1('67.12)

서울特別市立南山圖書館

1967

20

[국내학술기사]史籍巡禮/白麟 도협월보. 8,10('67.12)

韓國圖書館協會

1967

21

[국내학술기사]癸酉,庚辰,戊午字하여/白麟 도협월보. 8,1('67.1·2)

韓國圖書館協會

1967

22

[국내학술기사]現代分類法하여/白麟 도협월보. 7,6('66.7·8)

韓國圖書館協會

1966

23

[국내학술기사]古書裝釘版心하여/白麟 도협월보. 7,2('66.3)

韓國圖書館協會

1966

24

[일반도서]古書目錄規則:Catalogingrulesfororiginalclassics/百麟編

서울大學校中央圖書館

1966

25

[국내학술기사]古書分類法小考/白麟 도서관. 106('66.6)

대한민국 국립중앙도서관

1966

26

[국내학술기사]古版本裝幀版心하여/白隣 國會圖書館報. 2,11('65.11)

大韓民國 國會圖書館

1965

27

[국내학술기사]古文書硏究와그整理問題/白麟 國會圖書館報. 1,4('64.9)

大韓民國 國會圖書館

1964

28

[국내학술기사]奎章閣略史2/白麟 圖書館報 2

서울대학교부속도서관

1964

29

[국내학술기사]故金泰律先生小傳/白麟 도협월보. 5,7('64.9)

韓國圖書館協會

1964

30

[국내학술기사]奎章閣과그藏書邊遷/白麟 도협월보. 4,4('63.5)

韓國圖書館協會

1963

31

[학위논문]奎章閣藏書硏究/白麟

연세대학교

1962

32

[일반도서]奎章閣藏書에대한硏究:朝鮮圖書解題未收書目五十種/白麟編

연세대학교도서관학과

1962

33

[국내학술기사]分類規程/白麟 도협월보. 2,2('61.3·4)

韓國圖書館協會

1961

34

[국내학술기사]分類規程/白麟 도협월보. 2,4('61.6)

韓國圖書館協會

1961

35

[국내학술기사]分類規程/白麟 도협월보. 2,3('61.5)

韓國圖書館協會

1961

36

[국내학술기사]分類規定/白麟 도협월보. 2,1('61)

韓國圖書館協會

1961

37

[국내학술기사]圖書目錄法入門/白麟 도협월보. 1.4('60.6)

韓國圖書館協會

1960

38

[국내학술기사]圖書目錄法入門/白麟 도협월보. 1.2('60.4)

韓國圖書館協會

1960

39

[국내학술기사]分類規程/白麟 도협월보. 1.9('60.12)

韓國圖書館協會

1960

40

[국내학술기사]圖書目錄法入門/白麟 도협월보. 1.3('60.5)

韓國圖書館協會

1960

41

[국내학술기사]圖書目錄法入門/白麟 도협월보. 1('60.7·8)

韓國圖書館協會

1960

42

[국내학술기사]分類規定/白麟 도협월보. 1.8('60.11)

韓國圖書館協會

1960

43

[국내학술기사]圖書目錄法入門/白麟 도협월보. 1('60.3)

韓國圖書館協會

1960

44

[국내학술기사]도서목록법해설/백린 새교육. 11,2('59.2)

대한교육협의회

1959

 

백린 선생의 여러 저작목록을 보니 그가 사서로서 뿐만 아니라 훌륭한 서지학자였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이 책 <한국도서관학 연구>가 그 분의 석사논문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1962<奎章閣藏書硏究>가 분명히 이 분의 석사논문이고, 그 후 여러 편의 논문을 생산한 끝에 1969년 이 책이 처음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 책이 한국도서관협회 세 번째 총서로 나왔다는 점에서 협회 측에 뭔가 기록이 남아 있을 것으로 사료된다. 후속 연구가 진행되면 그 점도 충분히 조사해야 할 것이다.

<한국도서관 통사>에 대한 나의 생각은 선학들의 마음에도 깊이 남아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에서 서지학적 지식과 함께 학문적 업적을 이루었던 몇 분 교수들의 정년 문집을 찾아보았다. 퇴임하면서 후학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들과 자신의 대표 저작들이 묶여 있는 책이어서 의미 있는 발견이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연세대 이재철 교수의 <한국문헌정보학의 문제들>, 정형우 교수의 <조선조 서적문화 연구>, 성균관대 천혜봉 교수의 <한국서지학 연구><나려인쇄술의 연구>, 중앙대 심우준 교수의 <서지학의 제문제> 등 여러 책에서 많은 힌트를 찾을 수 있었다. 그 분들 역시 이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책들의 내용 또한 방대하고 분류, 편목에 치중해 있고 당장 살펴볼 여력이 안되는 점은 아쉽지만 후일을 기약해야할 듯하다.

찾아보면 볼수록 읽을 책이 넘쳐난다. 늘 그렇듯이 부족함을 느끼게 된다. 다만 이 시점에서 많은 후학들이 뭉쳐 무엇인가 해내야한다는 소명감은 더없이 분명해진다. <한국도서관사>를 제대로 읽어보자고 한 시작한 일인데 왜 이리 어깨가 무거워지는지 모르겠다.

시작이 반이라고 했다. 그래 읽고 쓰는 일만 남았다. 믿는 구석이 있다. 내 부족함을 충분히 메꾸어줄 여러 동지들의 힘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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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포럼문화와도서관

()포럼 문화와도서관 김송이

 

 

니콜라스 카(2015).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서울: 청림출판
클라이브 톰슨(2015). 생각은 죽지 않는다. 서울: 알키(시공사)

 

 

 이번 토독회의 토론 도서는 상당히 두꺼운 책 두 권이었다. 토독회는 한 달에 한 번, 월례회의 전에 진행되지만 7월에는 월례회의가 없어 두 달 만에 열리게 되었기에 6월의 토독회 때 아예 두 권의 책을 골랐다.

 읽기 전에는 책의 두께를 보고 걱정했지만 막상 읽어 보니 아주 어려운 책은 아니었다. 토론 중에도 언급되었지만 꼼꼼히 짚어가며 읽는 것보다는 전체적으로 읽어나가면서 생각할 부분을 짚는 것이 어울리는 책들이었다.


 제목만 보면 카의 책과 톰슨의 책은 정반대의 이야기를 다룬 것으로 보인다. 인터넷의 발달로 사람들은 점점 더 깊이 있는 독서를 피하고 그 때문에 생각을 덜하게 된다는 의견과, 그럼에도 생각은 계속될 것이다라는 의견의 대립으로 보이지만 실제 읽어보니 두 책은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책은 매체다. 지식과 정보를 담고 있는 하나의 형태다.
 최근에는 오랜 기간 동안 익숙하게 사용된 종이책 외에도 다양한 형태로 지식과 정보가 부유한다. 카는 이러한 환경의 변화로 사람들은 길고 긴 텍스트를 읽는데 어려움을 겪으며, 그 때문에 독서의 형태도 가볍게 읽고 지나가는 것으로 바뀌었다고 지적한다. 이에 대해서는 톰슨도 동의한다. 다만 두 저자가 보는 관점이 다를뿐이다. 카는 사람들의 독서 형태가 바뀌고 사고 형태가 바뀌고 또 컴퓨터와 인공지능의 발달로 인해 인간이 점점 퇴보할 것이라 우려한다. 반면 톰슨은 컴퓨터와 인터넷, SNS의 발달로 인해 시공간을 뛰어 넘은 집단지성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본다.


 위에 적은 글을 보면 짐작할 수 있겠지만 카보다는 톰슨의 생각에 공감한다. 물론 카의 지적처럼 문학소설 한 권을 긴 호흡으로 읽어내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고, 우려한대로 컴퓨터와 인공지능 기술이 빠른 속도로 발전하지만 이러한 변화 역시 양날의 검이다. 즉, 읽기 방식의 변화는 많은 정보를 빠른 시간 내에 읽기 위한 기술의 변화이며, 첨단 기술 자체는 가치 중립적이고 어떻게 활용하는가는 인간의 몫이다. 카가 예로 든 인간을 이긴 체스 컴퓨터나 정신과 상담을 해주는 프로그램처럼 우려할 부분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톰슨이 제시한 다양한 활동과 사고 방식이 더 끌렸다. 위키백과의 편집, 아이티 지진과 이집트의 시위 사태 당시 구글지도와 SNS를 활용한 정보 공유와 자원 배분 등은 충분히 카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매력적이다.


 무엇보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지식과 정보를 담는 매체는 진화중이며 최근 들어 급속히 변화했다. 그렇다면 그것을 읽고 활용하는 방식 또한 종이책을 대할 때와는 달라지지 않을까. 물론 깊숙하게 읽고 생각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모든 사람이 그럴 필요는 없지 않을까.

 

 어떤 의미로는 토지도 태백산맥도 톨스토이의 장편 소설도 읽지 않은 자신에 대한 변호일지도 모르지만, 이 책 두 권을 읽어냈다는 것만으로도 아직 읽기 능력이 죽지 않았다고 위안을 해본다.

 


 책 리뷰만 적자니 조금 아쉬워서 토론 도중에 등장한 이야기를 덧붙인다.

 토독회에서는 매체의 변화, 사고의 변화에 따른 읽기 기술의 변화가 있어도 글쓰기의 중요성은 지속될 것이라 보았다. 다만 이러한 변화 속도를 도서관이 따라가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라는 우려가 있었으며 도서관의 존재 의의와 역할, 그리고 앞으로 사라질 직업 목록에 당당히 오른 사서에 대한 자성(自省)도 언급되었다.

 


 다음 토독회는 9월 둘째 주 토요일인 9월 12일에 있을 예정이며 토론 도서는 백린의 『한국도서관사』이다. 1965년에 발행되어 1981년에 재출간되었고, 현재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원문을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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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포럼문화와도서관

《독서국민의 탄생》

 

()포럼 문화와도서관 김소영

(도쿄대학 도서관정보학 박사과정 수료)

 

 2015 6 13()포럼 문화와도서관 아래 작은 모임이 시작되었다. 모임 이름은 토독회. 토요독서회의 줄임말이다. 포문도 정례회의가 있는 토요일에 만나 함께 읽은 책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로 넓은 범위의 진행 방법만 정하고 아장걸음을 떼었다.

 

 토독회의 첫 책은 나가미네 시게토시가 2004년 출간한 책을 다지마 데쓰오와 송태욱이 번역하여 2010 도서출판 푸른역사가 출판한 《독서국민의 탄생》(원서명: “読書国民”の誕生―明治30年代の活字メディアと読書文化)이다.

 저자는 도서관단기대학( 쓰쿠바대학) 별과를 수료하고 도쿄대학교 사료편찬소 도서실에 근무하고 있는 도서관인으로 자신의 전공과 근무지의 특성을 살린 저작을 발표하여 성과를 인정받아 왔다. 이전 저작인 《잡지와 독자의 근대》, 《모던 도시의 독서공간》은 관련 학회에서 우수 단행본으로 선정되어 수상을 하기도 하고, 이 책의 내용 중 일부는 《도서관계》와 같은 관련지에 투고한 논문을 바탕으로 하는 등 연구를 본업으로 하지 않으나 연구에 기반한 저작 활동을 꾸준히 해왔다.

책에서는 활자미디어를 일상적으로 읽는 습관이 몸에 사람 독서국민이라고 정의한 독서국민이 형성되기 위한 요건으로 활자미디어의 유통과 읽는 습관의 확산을 설명하고, 국민국가의 육성책으로써 위로부터 만들어진 독서 장치를 통해 독서국민의 형성 과정을 살펴보고 있다. 20세기 전후 일본의 출판유통업이 철도라는 인프라가 구축되면서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되고, 이로 인해 독서 시장과 문화가 발달하여 독서 습관이 몸에 독자 공중이 탄생하게 경위를 주요 내용으로 한다.

 저자는 내용을 3 6 구성으로 풀어낸다. 1 활자미디어의 유통에서는 1890 전후 (메이지20~30년대) 철도와 출판유통업의 확산으로 형성된 전국 독서권(1) 신문사 출판사들이 펼친 지방 독자에 대한 지원 활동(2) 다루고, 2 이동하는 독자에서는 차내 독자의 탄생(3) 여행 독서 시장의 형성(4) 살펴본다. 3 독서 장치의 보급에서는 독서 장치의 정치학으로써 신문종람소와 도서관(5), 그리고 도서관 이용자 공중의 탄생(6) 서술한다.

 가깝고도 역사, 근대의 이야기는 우리나라의 것도 낯설 때가 있는데 이웃나라의 사정이니 배경지식이 없으면 쉽게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다. 도서관계에 종사하는 독자라면 3부를 먼저 읽고 일본이 국민국가의 육성책으로써 도서관 설립을 어떻게 계획했는지, 당시 도서관 이용자의 확산 모습을 파악한 단계의 사회적 배경을 확인하기 위해 1, 2부를 읽는 것도 좋을 같다.

 세계 보편사로써 읽기의 역사(讀書史) 대략, 읽고 쓰는 능력의 보급(식자율)에서 시작하여 읽을거리의 다양화, 읽는 문화의 발달로 요약할 있을 것이다. 저자는 보편사로써 독서의 역사를 전제로 일본의 근대를 분석하고, 일본의 특수성을 서술하려고 것으로 보인다. 이를 위해 당시 간행물을 면밀히 조사하는 작업을 실시하고, 근대 일본에서 철도 유통을 통해 읽을거리가 다채로워지고 읽는 습관이 일반화되는 역사를 짚어 내면서 일본의 특징으로 독서국민의 형성과 국민국가의 형성이 선후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동시적으로 진행되었다는 점을 들고 있다.

 내용의 타당성을 엄밀히 검증하기에는 미흡한 독자이지만 20세기 초 일본의 독서문화를 설명할 수 있는 견해 중 하나가 아닐까라고 생각한다. 특히, 3부에서 독서장치 중 하나로 도입된 도서관이 독서국민의 형성에 역할을 했다는 점을 명확히 짚어 도서관의 탄생과 독서하는 공중이 분리되지 않는 것임을 환기시키고 있다. 다만 이에 대한 반론은 다루지 않고 있고 논거들이 맞춘 매끄러워, 서술과정의 처음부터 결론을 강하게 내리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라는 인상이 들었다.

정치, 경제, 법률, 제도 등과 같은 거시적 접근이 아닌 개별적 사회현상에 집중한 접근, 즉 서구화와 제국주의 같은 배경은 함구하고 철도’, ‘호텔’, ‘신문과 같은 시대적 상징물을 들어 독서와 도서관에 접근한 시도는 이 책의 독창적인 부분이지만 읽고 난 뒤 다소 아쉬움이 남았다. 시대적 배경을 배제하여 각 사안의 대내적 상황에 집중할 수 있었던 반면 전체 현상을 꿰는 중요한 축이 드러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책의 아쉬운 점을 하나 더 말하자면 연대 표기에 관한 것이다. 역자의 각주가 소상히 달려 있어 독자에 대한 배려가 상당한데, 일본 연호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를 위해 본문 중에 서력을 병기하거나 책 전후에 범례를 하나 넣었으면 더 좋았을 거 같다.

 일본의 사정을 읽으며 당시 우리나라의 실정을 어땠을까라는 궁금증이 읽는 내내 머릿속 한 켠을 차지했다. 서구의 Library는 지도(그림)와 서적(문자)을 보관한 곳으로 해석되어 일본에서 도서관이라고 번역되었고 이 번역어는 우리나라를 포함한 한자문화권에서 널리 쓰이고 있다. 번역어의 차용, 그리고 일제강점기라는 역사로 인해 일본에서 근대 도서관이 성립된 모습은 우리나라에도 큰 영향이 있었을 것이다. 책 속 도서관 풍경에 주요 이용자로 수험생이 등장하고, 지방에는 도서관이 부족했다는 등 멀지 않은 과거의 우리나라 모습이라 해도 이질적이지 않은 것들이 묘사되었다. 이 책에 나란히 놓을 수 있는 우리나라의 독서문화와 도서관 성립에 대한 역사적 탐구가 있다면 내용에 대한 더욱 선명한 이해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독서의 화두 중 하나로 독자 또는 독자 그룹이 어떻게 읽고 있는가, 읽은 것을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가 등을 포함하는 넓은 의미의 리터러시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책은 제목이 지시하는 대로 식자 능력이 있는 사람이 읽는 습관이 밴 독자 공중으로 거듭나기 까지를 다루고 있다. 독서국민의 성장이라고 불러도 좋을 탄생 이후의 이야기가 사뭇 궁금해진다.

 

 토독회의 다음 일정은 88일 예정으로 함께 읽을 책은 2권이 정해졌다. 현대인의 사고력에 대한 상반된 의견을 쓴 것으로 보이는 니콜라스 카의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과 클라이브 톰슨의 《생각은 죽지 않는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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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포럼문화와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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